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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공직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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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거짓말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45호 입력 2010/08/31 09:38 수정 2010.08.31 09:37



 
ⓒ 양산시민신문 
허물 덮으려 계속된 거짓말
김태호 총리 내정자 낙마는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과
무한책임 요구하는 국민정서


1974년 미국 제38대 대통령인 닉슨은 임기 중 사임하는 오명을 얻는다. 2년 전 압도적인 표차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거짓말 파문으로 끝내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며칠 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정치인의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거짓말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고 이 사건 이후로 게이트(gate)라는 단어는 권력형 비리나 부패 스캔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가 ‘젊은 피’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낙마시키고 말았다. 가까운 경남 거창 출신으로 도의원과 군수, 두 번의 도지사를 역임해 누구보다도 우리의 기대를 모았던 48세의 김태호 내정자의 자진 사퇴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지난해 말 경남도지사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들었을 때 많은 도민들은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과 함께 말 못할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보다 높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잠시 몸을 낮추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도민들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후자의 배경을 기대했고 가까운 장래에 중요한 정치인물로 다시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상당했었다. 이번에 총리 후보자로 발표됐을 때 많은 도민들이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큰 기대를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마음의 상처만 떠안게 됐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의 사퇴는 공직자로서의 위법이나 비리에 대한 인식과 금전거래의 모호성, 부적절한 소비생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있지만 가장 큰 핵심은 잦은 말 바꾸기로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데 끝나지 않고 새로운 자료가 제시될 때마다 기왕의 답변을 뒤집는 태도는 믿음성을 주지 못했다. 말 바꾸기란 결국은 거짓말인 셈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증거가 나오기 전 까지는 부인하고 보는 청문회에서의 자세는 시정의 잡배들과 틀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를 내세운 청와대 내부에서도 동정론이 사그라들고 한나라당에서도 안되겠다는 판단이 나왔겠는가.

지난주 내내 진행돼 총리 후보와 몇몇 장관 내정자의 낙마를 끌어낸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분노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이 자식들을 위한답시고 부끄러움 없이 위장전입을 하고, 왜 자녀들의 이중국적으로 구설에 오르고, 왜 밥 먹듯이 논문을 표절하거나 중복게재하고, 왜 아내의 부동산 투기를 내조처럼 당연시 여기는지, 이러고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특정한 집단이 사회적 이익을 독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회정의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가진 능력이 나라에 기여할 만한 사람이면 도덕적 결함은 묻어 넘길 수 있다는 발상인가. 그렇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 도리나 이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릇 고위공직자라 함은 자신이 속한 기관의 비리를 근절하는 청렴 노력만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다. 자신과 주변에 대해 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최소한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은 소극적 처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흔히 만연한 관행이라고 둘러대서는 안 된다. 자식 잘 키우려는 부모 심정에서 한 일이라는 변명도 위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윤리의 소신을 견고히 하면서 그 자신감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비전을 실행해 가는 것. 그것이 공직자가 가져야 할 덕목인 것이다.

중국의 4대 고전인 대학(大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심신을 닦고 집안을 바로잡은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공직자의 거짓말은 자신의 심신을 잘 닦지 못한데서 나온다. 부끄러운 허물을 감추려는 본능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 미리 헤아려 허물을 만들지 않는다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이미 허물을 만들었다면 국민을 이끌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방정치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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