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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제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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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은 누구인가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47호 입력 2010/09/14 09:57 수정 2010.09.14 09:57



 
ⓒ 양산시민신문 
울주서 열린 박제상문화제
수십억 들인 기념관 부러워
양산 충렬 선조인데 우리는
생가터 유적정비도 하세월


지난 주말 이틀간의 일정으로 제1회 박제상 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는 첫날 박제상을 추모하는 위령제와 헌다(獻茶, 차를 만들어 바침)에 이어 모듬북 공연과 가족음악회가 진행됐다. 둘째 날에는 신라시대 저잣거리 재현행사와 박제상 퀴즈, 한시 체험과 함께 국악 공연이 펼쳐져 시민들을 끌어모았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지만 아쉽게도 위의 내용은 인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일이다. 울주군과 울주문화원은 울주군 두동면에 있는 치산서원 일원에서 박제상을 기리는 첫 문화축제를 개최했다. 치산서원은 신라 눌지왕 때 왜국에 간 박제상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부인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 자리에 1745년 조선 영조때 건립된 사원으로 울산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박혁거세의 9세손인 관설당 박제상은 신라 내물왕 7년(362) 삽량주 수도에서 태어나 어릴 적 경주로 유학을 갔다가 김교 부인과 결혼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삽량주는 양산의 옛 고을 이름이다. 33세에 삽량주의 간(干, 통치자)이 된 박제상은 눌지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와 왜(일본)에 건너가 볼모로 잡혀 있던 왕의 형제들을 고국으로 탈출시켰으나 자신은 끝내 왜국 군에게 잡혀 유배되었다 살해당했다. 왜왕에 잡혀 신하되기를 종용당했지만 “계림(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고,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상은 받지 않겠다”고 항변한 뒤 처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렇듯 박제상은 우리 양산의 선조 중에서도 으뜸가는 충절의 의인으로 칭송되고 있다. 양산을 충절의 고장으로 칭하고 있는 것도 삼조(三朝, 신라, 고려, 조선의 세 왕조)에서 박제상이 으뜸이다.

하지만 박제상의 탄생지이자 절개를 빛낸 이 곳 양산에서보다 울산에서 더욱 박제상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울산시는 박제상 문화제를 계획하면서 심포지엄을 열고 박제상을 학술적으로 재조명하는 등 울산의 대표적 충의인물로 알려나가고 있다. 특히 2008년에는 국비와 시비를 합쳐 65억원을 들여 박제상 기념관을 건립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치산서원의 왼편 부지에 세워진 박제상 기념관은 2동의 한옥 속에 박제상이 살던 시대상과 울주군의 민속을 담은 울주 문화관, 교육 영상실을 비롯해 박제상 추모비와 효열비가 세워진 옥외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2005년 울산시가 편찬한 ‘울산의 충의정신’ 책자를 보면 박제상의 출생지를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라고 기술한 <영해박씨대동보, 1987>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 학자들의 학설을 내세워 울산출신이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기고 있다.

우리 시가 소토리에 있는 박제상의 생가터로 추정되는 곳에 건립된 효충사를 중심으로 한 유적지 정비사업을 게을리 하고 있는 동안 인근의 울산시에서 왕성한 기념사업으로 자신들의 브랜드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에서도 2000년 문화원에서 <박제상 사료논총>을 편찬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박제상에 관한 논문과 각종 사료 뿐 아니라 제영(題詠)과 구전민요를 수집 정리했다. 아쉽지만 그나마 사료의 집대성 측면에서 의미가 큰 일이었다.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삽량문화제(뒤에 문화축전으로 개명)는 그 이름의 상징성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 박제상의 충절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문화행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박제상은 허울 뿐인 테마로 전락하고 관중을 끌어모으는데 유리한 공연과 먹거리 등 평범한 시민행사로 변질되고 말았다.

7월 부임한 나동연 시장은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박제상과 이원수 선생 등 양산 출신 인물을 테마로 한 고유의 문화행사와 축제를 발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기존의 삽량문화축전의 전시성 행사 위주의 편성을 개선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 뒤 축전을 준비하는 추진위원회에서도 많은 위원들이 과감한 변모를 요구했고 특히 박제상을 테마로 하기 위해서는 박제상에 대한 학술발표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시는 현재와 미래의 조화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의미를 다시 녹여내는 정신적 선양사업이 빠져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가장 훌륭한 조상인 박제상 공의 업적과 생애를 재조명하여 양산의 이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충의정신을 고양함으로써 자발적인 애향심을 키워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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