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무엇이 그를 설산(雪山)으로 이끄는가
..
오피니언

무엇이 그를 설산(雪山)으로 이끄는가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49호 입력 2010/10/05 09:34 수정 2010.10.05 09:34



 
ⓒ 양산시민신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히말라야로 떠난 이상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양산의 산사나이 이상배가 또다시 눈 덮인 히말라야로 떠났다. ‘히말라야 중의 히말라야’라 불리는 해발 7천126m의 히무룽 등정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다. 히무룽은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너머에 비경을 간직한 산으로 1998년 일본 원정대가 처음 정상에 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개척지다. 많은 히말라야 고봉이 그렇지만 특히 히무룽에는 등반 루트가 상존하지 않아 정상 정복에 어려움이 많다. 이상배 대장은 코리안 신 루트 개척을 위해 지난 봄 15명의 대원을 이끌고 히무룽 등반대를 구성, 등정에 나섰지만 두 번째 캠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악천후로 진로 개척에 실패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후 다시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이상배는 올해 우리 나이로 쉰일곱이다. 공직자라 해도 정년퇴직이 3년 밖에 남지 않은 고령이다. 더구나 그는 20년 전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하여 척추가 내려앉고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고 몇 달간 병상 신세를 졌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의 종아리에는 끊어진 인대를 연결한 철심이 박혀 있다.

그런 그가 지구의 용마루라 불리는 에베레스트를 세 번의 도전 끝에 올랐다. 2000년, 2006년 두 번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듬 해 54세의 나이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나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06년 원정에서 그는 정상을 눈 앞에 두고 악천후와 산소 부족에 시달리다 조난당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해발 8천 미터의 설산에 혼자 낙오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경우라는 걸 고산등반가라면 안다. 그는 그 때 처음으로 죽음을 눈 앞에 맞았다고 한다. 천우신조로 다른 원정대가 발견해 구조됐지만 그 일은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상배는 이전에도 절친한 산 친구 둘을 사별하는 고통을 경험했다. 한 사람은 패러 글라이딩 도중에 추락했고 또 다른 친구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2000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멤버였던 암벽전문가 박정헌 씨는 다음 해 촐라체 북벽 등정 후 하산길에 조난당해 대부분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이상배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던 박 씨는 그 후 유명 강사가 되어 ‘인간 의지의 승리’를 주제로 초청 강의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상배는 삶과 죽음은 늘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동안 무한도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인터넷 사이트 ‘아시안트레킹 닷컴’의 초기 화면에는 그가 주창하는 슬로건이 떠 있다. ‘역사는 도전하는 사람의 몫, 꿈이 있고 목표가 있는 인생은 삶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1980년대 초 군청의 말단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면서 양산에 첫발을 내딛게 된 그는 우연히 암벽을 타는 사람들을 보고 등산학교에 입교해 전문등반에 빠지면서 안정된 공직도 팽개치고 본격적인 해외등반에 나섰다. 산을 다니다 보니 항공스포츠에 매료돼 주저하지 않고 패러 글라이딩 교습소를 찾게 되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나서 독자적인 패러 글라이딩 스쿨을 창설해 1995년 백두산에 올라 패러 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이벤트를 전개했고, 이듬해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히말라야 초오유(8천201m) 패러 글라이딩 원정대를 결성해 네팔로 향했다.

무거운 낙하산 장비를 등에 지고 8천 미터 정상에 오른 뒤 낙하산을 타고 베이스 캠프로 귀환하는 놀라운 퍼포먼스가 방송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면서 그는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뒤 6대륙 최고봉 등정, 에베레스트 청소 등반 등의 활약을 보인 끝에 2006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했다. 양산을 빛낸 체육인으로 명성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도전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환갑을 눈 앞에 둔 나이에 영하 30도의 눈 덮인 히말라야로 떠나는 사람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발목 인대를 철심으로 연결하고 척추가 내려앉아 장애인 판정도 가능하다는 그가 또다시 길을 나선 것은 무모한 도전인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인가.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기에 후회는 없다는 이상배의 산에 대한 열정은 비단 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에 이 시대 편한 것만 좇는 젊은이들에게 무언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10월 중순 히무룽 정상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