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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칠레, 그 막장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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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칠레, 그 막장에서 배운다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51호 입력 2010/10/19 09:55 수정 2010.10.19 09:55



 
ⓒ 양산시민신문 
대통령과 장관이 지키는
칠레 광부 구조현장을 보며
인간의 존엄성에 감동하고,
민생과 호흡하는 정치 느껴


69일 만에 지상으로 나온 그들의 모습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하 700m의 탄광 막장에 고립되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여유와 건강함은 마치 고난도 경기를 끝낸 스포츠 선수처럼 의연하기까지 했다. 22시간에 걸친 구조작업의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우르수아 작업반장은 끝까지 기다리고 있던 대통령과 포옹하며 위대한 승리를 자축했다.

지난주 세계의 언론을 뜨겁게 달군 ‘칠레 광부 구조’ 광경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 속 깊이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연초 5백여명의 희생자와 2백만명의 이재민을 낸 대지진 발생으로 분열되고 황폐해진 칠레 사회를 다시 하나로 단결시킨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이란 가장 낮은 하층계급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 구출된 칠레 광부 33명도 평소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자제력, 이타적인 배려와 빛나는 리더십 등은 많이 배운 지도층 인사들에 비교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 주었다는 측면에서 추앙받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믿음, 동료애와 단결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첫 구조자를 얼싸 안은 뒤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대부호 출신 대통령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모른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피녜라 대통령은 구조현장에서 동족에 대한 애정을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재난을 국가 통합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무 책임자로서 골본 광업부장관의 모습은 더욱 진지했다. 광부들의 생존이 확인된 직후부터 줄곧 현장에 기거하면서 구조작업을 이끌어 온 골본 장관은 매몰 광부나 그 가족들로부터 진심 어린 감사를 받았으나 “33명의 광부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는 환호하는 국민들 속에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감동을 주는 정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정치란 여러 가지 의미와 해석이 있겠지만 결국 ‘국민을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대립과 분쟁을 조정하고 통일적 질서를 유지하는 작용인 정치는 국민적 이해가 수반될 때 가장 큰 힘이 발휘된다고 본다.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이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언행일치를 보여줄 때 비로소 사회정의가 바로서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아우르는 큰 화두가 ‘공정한 사회’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든 분야에서 공정한 질서와 관계를 이루도록 하자고 주창한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 나아가 군대,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 약자의 불이익을 해소하려는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 국무총리 등 공직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포함한 후보자 몇 명이 낙마하면서 불거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논쟁은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큰 격차를 보이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 불감증에 질타가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천재지변으로 재난을 입은 경우가 많다. 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태안 기름유출사고 등 산업현장에서의 대형사고도 발생했다. 이럴 때마다 많은 국민이 직접 나서서 인명 구조와 재난 복구에 몸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이 땅의 정치인과 고위층은 ‘현장 시찰’이 고작이었다. 그 다음에는 책임 공방으로 서로 삿대질만 해댄다. 이러다 보니 구조요원이나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차라리 “와서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푸념이 나오게 된다.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 지도층이 세금 잘 내고, 때가 되면 아들 군에 보내고, 당장 필요없는 땅 사려고 주소 옮기지 않고, 요직에 특채시켜 멀쩡한 다른 아이 앞길 가로막는 일만 없다면 서민들이야 굳이 불만을 토로하겠는가. 높은 자리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만 늘어놓으니 팔자타령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감동을 주는 정치는 지방정부에서도 매한가지다. 지역의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몸을 낮추어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할 때 비로소 ‘가슴으로 통하는’ 민생정치가 시작된다. 시장바닥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고 위로하던 그때의 심정을 기억해내라. 권력에 기생하는 토호들과 결별하고 민생의 현장에 나서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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