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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에 온 지 1년 된 사할린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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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산에 온 지 1년 된 사할린 동포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52호 입력 2010/10/26 09:40 수정 2010.10.26 09:40



 
ⓒ 양산시민신문 
우리말과 글 잘 통하지 않는
고국에서 생활 쉽지 않지만
양산시민으로 동화되려 애쓰는
그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자


그들은 모두 한 곳에 산다. 상북면 대석리의 영구임대아파트, 정부에서 마련해 준 보금자리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돼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다. 대부분 1945년 이전에 출생한 1세대와 그 배우자가 주를 이루고 지인이나 모자 세대가 몇 가구 있다. 지금은 러시아에 속해 있지만 반 세기 전 일본령으로 있을 때 징용이나 개인적 사유로 건너 갔다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망과 함께 역사의 미아로 전락해 돌아오지 못하고 눌러앉게 된 동포들이다. 지금 그 자손들이 사할린 전역에 4만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영구귀국 지원사업을 1990년대부터 조금씩 진행해 오다 2007년 이후 한국과 일본 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아 본격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온 사할린 동포들은 경기도, 충청남북도와 함께 경남 김해와 양산의 주공임대아파트에 분산 배치됐다. 양산에는 40세대 80명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이주 1년을 맞아 의미있는 파티를 열었다. 마침 지역구 시의원과 면장, 시청의 지원을 받아 제법 지역 연예인들의 공연도 보면서 한데 어우러져 잔치 기분을 즐겼다. 그들은 파티문화에 능숙한 편이다. 작은 모임이라도 꼭 정장을 챙겨입고 참석하는가 하면 여흥을 즐길 때도 주저함이 없이 나서는 데서 서구인의 습관이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웃간에 우의가 돈독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음악을 즐기는 것이 영판 한국사람이다.

사할린 동포들은 귀국 초기에 우리나라 말과 글이 능숙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사할린에서 우리 말을 조금씩 쓰긴 했지만 워낙 오래 잊어버리고 있던 터라 주민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양산에 와서 살고 있지만 양산이라는 고장을 제대로 알아가는 일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양산에 대해 더많이 알기를 원했고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곳이기에 시민으로서 참여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점점 잊혀져 갔다. 물론 영구귀국 지원사업을 뒷바라지했던 적십자사 봉사원들은 몇 달 동안 캠프를 운영하면서 행정처리와 사회적응을 도왔다. 지역 사회단체에서도 김장담그기 행사나 위문을 통해 온정을 나누었다. 행정기관에서도 국적 취득과 기초수급자격 취득과 같은 후생사무를 적극 지원했고,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는 별도 공간과 편의 제공에 앞장섰다. 시에서 주선한 양산투어를 나가 지역의 문화적 뿌리를 돌아보았고, 간혹 자신들이 추렴해 관광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새집에다 생활비까지 제공해 넉넉친 않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고 늦게나마 한글교실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우리는 복지정책을 이야기할 때 늘 적지 않은 예산과 대상인원을 내세우며 외형적 결과에 만족하곤 한다. 하지만 복지 대상자가 느끼는 체감지수는 다르다. 
사할린 동포들 중에는 고학력자나 기능보유자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학식을 이용해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별도의 소득이 있으면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매일 놀아야 하는데 놀 데가 마땅하지 않다. 아파트 노인정에는 아직 서먹해서 어울리기가 쉽지 않고, 날씨가 추워지니 야외에 나올 수도 없다. 우리나라 문화를 배우며 즐기고 싶어도 시설이 멀어 다니기가 어렵다. 얼마 전에는 동포 한 분이 사망했는데 장례절차를 몰라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한 사람 분의 수당 지급이 중단돼 홀로 남은 배우자는 생계가 막막한 지경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시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보살펴줄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온전히 대한국민으로서 자리잡으려면 적어도 몇 년은 족히 걸린다. 수십년 동안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살아 왔는데 그렇지 않겠는가. 따라서 당국에서는 전담 팀을 꾸려 자주 찾아 뵙고 어려운 점이 없는지 살펴 그들이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하겠다. 기본적인 거 다 해 주었으니 알아서 살아라고 한다면 너무 야박하지 않겠는가.

1주년 기념 파티에서 동포 한 분이 인사말을 하면서, 양산시민으로서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때의 감동을 잊지 않고 산다고 했다. 또 주변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기 위해 열심히 우리 말과 글을 익힌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넘어오고 있다. 더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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