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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사할린동포의 성금
오피니언

사할린동포의 성금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372호 입력 2011/03/22 10:37 수정 2011.03.22 10:29



 
ⓒ 양산시민신문 
일본과의 불행한 역사 속에
피해자인 사할린동포의 성금
재난앞에 숙연한 인도주의로
한ㆍ일간 새로운 이정표 되길


3.11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 온정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다. 언론과 적십자사, 공동모금회 등 공공기관에 마련된 성금품 접수창구에 기부가 답지하고 있고, 한류스타와 민간기업, 일반 국민들까지 이재민 구호에 정성을 보태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최근 영토분쟁으로 대일감정이 격화된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많은 국가들이 인도주의에 입각한 구호에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열도는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복구는커녕 이재민 보호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폭발사고로 인해 방사능물질의 유출 공포가 확산되면서 모든 행정력이 원자로 냉각작업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진 발생 초기에 쓰나미 피해지역 주민들이 피난에 나서지 않다가 원전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소개에 나선 것도 방사능 유출 사고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계 언론이 원자력발전소 사태를 뉴스 첫머리에 다룸으로써 수십만 이재민들의 고통과 참상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린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해 살아남은 사람들도 식량과 물, 의약품의 부족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피해지역 병원에서는 대책도 없이 환자들이 죽어 나가고, 아이들은 자연재해의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해외에서 몰려드는 구호물자는 대부분 항구에 묶여 있고 이를 수송할 차량도 사람도 전무한 실정이란다. 재난지역으로 가는 도로와 통신, 전력이 두절되고 기름 부족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이재민 피난처에 대한 구호와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태안반도의 해상기름 유출사고나 연평도 피격사건, 그리고 태풍이나 화재 등 대형사고를 당할 때마다 신속하고도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당연하게 보아온 우리들로서는 이웃나라 일본의 재난구호활동이 지나치게 답답해 보인다.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에서 이재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이해되지 않는다. 재난의 현장인 동북지역으로 가는 도로가 파괴된 후 복구되지 않고, 기름 부족에 차량과 장비가 올스톱되는가 하면 자원봉사자들마저 자신의 승용차 기름을 넣지 못해 현장으로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 국민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과 절제를 잃지 않고 대처해 나가는데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일하고 소극적이다. 이 정도면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은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공급부족으로 고통받는 나라.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이재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할 조치가 아닌가. 전국의  중장비를 총동원해서라도 피해지역으로 가는 도로를 우선 복구하고 헬기나 군용 수송기를 띄워 보급물자를 후송해야 하지 않는가. 질서와 양보가 몸에 밴 일본인들이지만 이제 그 참을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주 정신대 할머니들이 성금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뉴스가 작은 감동을 주었는데 우리 지역에서도 이에 못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상북면의 한 임대아파트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할린동포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을 적십자사에 기탁하였다는 소식은 한ㆍ일간의 기구한 역사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할린동포, 그들이 누구인가. 35년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많은 조선인들의 후손이면서 해방 이후에도 러시아의 점령으로 조국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동토의 섬나라에서 한많은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 아닌가. 보드카를 즐기며 서구식 생활에 젖어들었지만 이웃과 친하며 어울려 놀고 음식을 나눠먹는 배달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온 그들이 일본에 대한 오랜 분노와 원망에도 불구하고 이재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인도주의 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반만년의 한반도 역사 가운데 일본과의 불행한 관계는 두 번 있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20세기 초 35년간의 식민지 지배가 그것이다. 두 사건 모두 일본의 대륙진출 야욕의 발판으로 굴욕적인 짓밟힘을 받았던 사건이다. 특히 1910년 강제합병으로 주권을 잃고 해방이 될 때까지 민족문화의 말살을 기도한 일제 식민정책의 고통과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잊혀질만 하면 튀어 나오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도 양국의 관계를 경색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때 큰 재난을 입은 그들에게 숭고한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정신대 할머니와 사할린동포의 의연함은 국가간의 외교 노력을 넘어서는 선린우호의 큰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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