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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놀이의 유지ㆍ보존에 힘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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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놀이의 유지ㆍ보존에 힘 모으자”

김대형 기자 e2dh100@ysnews.co.kr 374호 입력 2011/04/05 10:26 수정 2011.04.05 10:15
웅상농청장원놀이 도 무형문화재 지정 10주년



 
ⓒ 양산시민신문 
지난 3일 웅상지역의 농경시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웅상농청장원놀이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지정 1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었다.

웅상농청장원놀이 보존회 안홍원(사진) 회장은 “시대가 흐를수록 옛 것에 대한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웅상농청장원놀이를 지속적으로 보전하고 유지해서 후대에도 우리 놀이를 통해 선조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무형문화재가 되도록 회원들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웅상농청장원놀이의 유일한 기능보유자 김필연 씨는 “먼저 작고하신 기능보유자 두 분의 역할까지 혼자 떠안게 되어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웅상농청장원놀이를 이어갈 인재들은 많이 양성되고 있다. 언제까지나 혼자서 이끌어 갈 수 없기에 후배자 양성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상농청장원놀이 후보자 박순범 씨도 “무형문화재 지정 10주년이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앞으로 제 모든 역량을 다해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고 우리 놀이를 유지 보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양산시민신문

[웅상농청장원놀이란?]소리와 동작으로 전통 농경의례 입체화

웅상지역은 회야강 상류 유역의 풍부한 수원과 비옥한 땅이 넓게 형성돼 있다. 자연스럽게 농경사회의 발달이 이뤄지고, 경작지가 확대됐다. 명동마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장용지와 택지가 조성되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농경지가 사라지면서 농사를 짓고 살아오던 어르신들이 일손을 놓게 됐다. 생활 터전이 사라지자 경로당에 모여 농요도 부르고, 옛일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60~80대 어르신들이 주축이 돼 농청원의 공동작업과 농경의례를 놀이화해 ‘웅상농청장원놀이’라 이름 하고 놀이를 시작했다.

여기서 ‘농청’은 노동력 협업을 위해 조직된 전통사회 농촌공동체며, ‘장원놀이’는 조선 후기 소농경영(小農經營)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단위로 두레형식으로 조직된 농민단체에서 공동 김메기 작업 과정에서 생겨난 농경문화다.

웅상농청장원놀이는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장원)을 선정해 술과 음식(장원 턱)을 준비하면서 시작한다. 장원가가 낸 장원 턱을 나눠 먹으면서 며칠 동안 한 해 농사일의 힘겨움을 풀고 풍년을 구가한다는 내용을 상황 순서와 동작에 따라 소리를 곁들여 입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놀이 자체는 소박하지만 짜임새가 있고, 소리도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전승계보도 명확하다.

웅상농청장원놀이가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웅상읍지의 발간이 마무리되면서부터다. 이때 웅상향토문화보존회가 결성됐고, 웅상지역 놀이인 웅상망시논매기 계승ㆍ보존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 놀이 구성원을 구성하면서 1996년 10월 양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11회 삽량문화축제에서 재연했다. 이후 웅상농청장원놀이는 1999년 남해군에서 열린 제30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81명이 출현해 양산망시논매기 장원놀이라는 이름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 수상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웅상농청장원놀이로 개명한 이후 제주에서 열린 제4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남 대표로 출전해 장려상을 받았다.

웅상농청장원놀이는 양산시의 중요 놀이로 인식돼오다 ‘웅상지역이 도시화된 지역임에도 전통사회의 농촌공동체인 농청이 1980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평가와 함께 2002년 4월 4일 경상남도 문화재(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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