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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면 답곡리, 일명 솥발산이라고 불리는 정족산(鼎足山) 북서쪽 자락에 공원묘원이 있다. 1979년 착공해 1991년 완공한 이 사설 공원묘원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솥발산공원묘원은 영남권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다.
1991년 부산 구덕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중 당시 불법으로 규정된 전교조 합법화 투쟁을 벌이다 투옥돼 단식하다 위암에 걸려 34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고 신용길 선생이 묻히기 시작한 뒤 경남과 부산ㆍ울산에서 노동운동 중 사망한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이제는 노동운동의 성지가 됐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솥발산공원묘원에는 30여명의 열사와 관련 희생자들이 묻혀 있다. 고 신용길 열사를 비롯해 최대림ㆍ박판수ㆍ이경숙ㆍ최복남ㆍ최경철ㆍ이성도ㆍ서영호ㆍ박창수ㆍ양봉수ㆍ신용길ㆍ권미경ㆍ배달호ㆍ박일수ㆍ곽재규ㆍ성기득 열사 등이 안식을 취하고 있다.
이 가운데 권미경 열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해 (주)대봉에서 미싱공으로 일하다가 살인적인 노동문제에 항거하며 1991년 22세의 나이로 옥상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배달호 열사는 1981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해 노조 활동을 했으며, 2003년 ‘두산중공업이 악랄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사망했다. 최대림 열사는 대우조선에 입사해 1998년 정리해고됐으며, 근로자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해 건조 중이던 배에서 42세의 나이로 분신ㆍ투신해 자살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는 해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솥발산공원묘원을 참배해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지난 2007년에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노동자 통일대회 남북대표단 90여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한편, 솥발산공원묘원 입구에 있는 노동열사ㆍ희생자 안내도에는 “이 묘역은 자신의 몸을 바쳐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아픔으로 살다 간 열사들과 그 뜻을 이어나가는 모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참 평등 세상 그날까지 민중들과 영원히 함께 호흡하며, 정의의 상징으로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