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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 소금]“내 집 기와 걷어다 학교 지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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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내 집 기와 걷어다 학교 지으라!”

김대형 기자 e2dh100@ysnews.co.kr 383호 입력 2011/06/07 10:30 수정 2011.06.07 10:29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양산시민신문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서쪽 야산에 비석이 하나 세워졌는데 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

이 비석의 주인공은 남강 이승훈(李昇薰, 1864.4.25~1930.5.9) 선생이다. 남강은 모진 고생을 하며 오산학교를 건설하였다. 한 번은 학교 교사를 건축하던 인부가 기와가 모자란다고 하자 그는 “내 집 기와 걷어다 학교 지으라!”라고 했다. 1926년 ‘동광’에 실린 그의 글은,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민족만을 위하여 숨 가쁘게 살아온 그의 후회 없는 생애를 잘 보여준다.

“만일 내가 다시 스무 살의 청년이 될 수 있다 하면 오직 조선을 위하여! 어언간 나이는 육십이 넘고 한 일은 변변한 것이 없소마는 나는 후회하지 않소. 지금 나를 쪼개어서 이십여세 먹은 청년 세 사람을 만들어도 그
세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조선을 위하여 일할 것이란 말이오”

당시 남강 선생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주었으며 오산학교에서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하였다.
그는 “낙심하지 말고 겨레의 광복을 위하여 힘쓰라, 내 유해는 땅에 묻지 말고 생리학 표본을 만들어 학생들을 위해 쓰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일제의 방해로 유언을 이루지 못하였다.

선생은 세 번에 걸친 9년간의 옥고와 시대의 여러 어려운 일들을 감수하면서도 오직 민족의 독립과 영광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다. 그의 생을 나타내는데 ‘무조건 나라를 사랑하였고 무조건 백성을 사랑하였다’는 표현 외에 더 의미가 있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56회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추모하며 남강 이승훈 선생의 아름다운 삶을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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