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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아침부터 햇살이 내리쬐는 다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대회에 앞서 간단한 체조와 개회식을 마치고 산문주차장에서 성보박물관 앞을 지나 한들못, 지산마을, 서리마을을 통과해 다시 산문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의 설명을 듣고 나니 출발 신호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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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한솔길~성보박물관 그리고 여왕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에서 출발 전부터 힘겨워했지만 산문을 통과해 통도사를 향해 걷는 숲길에 들어서니 싱그런 나무에서 발산되는 향기가 코를 찌르고, 길 양 옆에 늘어선 소나무가 햇빛을 가려 시원함이 느껴졌다. 이름붙여 무풍한송길이라 부르는 오솔길에는 자동차의 운행이 금지돼 있어 호젓하기까지 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웃고 떠들며 걷는 소리가 오늘만큼은 산새의 지저귐보다 더 정겹다. 한편으로는 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수첩을 들고 홀로 걷고 있는 나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라 씁쓸함도 밀려왔다. 고독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뒤를 돌아보니 3~4살 쯤으로 보이는 예쁜 아이가 엄마 손을 뿌리치며 노래와 함께 앙증맞게 걸어오고 있다. 한 스무 발자국 쯤 걸었을까 이내 지친 아이는 아빠가 끌고 있는 유모차에 앉더니 여왕의 모습으로 변신해 행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민지라고 대답했다. 민지 아빠는 “아저씨가 사진 찍는데 걷는 모습도 보여줘야지”라고 하자 민지는 들은 채 만 채 유모차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비록 민지는 유모차로 편하게 걷기대회에 참가하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민지의 모습은 너무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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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한들못 그리고 아름다운 노부부
민지네 가족을 뒤로 한 채 서둘러 걷다보니 어느새 통도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더운 날씨에 조금 힘이 들었지만 성보박물관을 지나쳐 통도사 옆 돌담길을 따라 걷는 동안 오른쪽 귀는 은은한 목탁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 왼쪽 귀는 산에서 졸졸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에 취해 힘든 마음이 어느새 잊혀졌다.
양쪽 귀가 호강하고 있는 순간, 내 눈앞에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노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걸음이 약간 불편하신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계셨지만 왼쪽 손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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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부탁에도 김판수(84) 할아버지와 강경숙(80) 할머니는 웃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손을 꼭 잡은 두 어르신의 모습만 보아도 두 어르신의 사랑이 절로 전해졌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을 향해 걷는 나에게 김판수 어르신은 “기자 양반, 이왕 실을 거면 사진이나 큼직하게 내줘봐”라고 말하며 할머니와 함께 연신 손을 흔들었다.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한들못~지산마을 그리고 다섯 악동
통도사 옆 돌담길을 지나 한들못을 통과하니 이내 지산마을로 가기 위한 작은 산길로 향했다. 길 옆으로는 막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져 있고 길 너머로는 영축산이 한 폭의 그림 같이 자리하고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함은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날씨가 더워지고 걸은 길이 꽤나 되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참가한 아이들은 걷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장면도 보였다. 사실 나도 같이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힘차게 내딛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앞 쪽의 다섯 악동(?)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끼리 행사에 참여한 듯 웃고 떠들며 연방 신나보였다.
“너희들 어디서 왔니”라고 물으니 보광중학교에서 왔단다. 보광중 F5(드라마 ‘꽃보다 남자’ 꽃미남 그룹 F4를 빗대어)라고 불러달라는 김경용, 서재민, 이동근, 김경규, 윤성수(사진 왼쪽부터, 보광중2) 학생은 학용품을 준다기에 행사에 참여했다고 당당히 밝혔지만 걷는 내내 논에 있는 개구리와 뱀에 신기해하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누구보다 행사를 즐기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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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마을~서리마을~산문주차장
녀석들과 웃고 떠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지산마을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라 행복했고 속도 또한 빨라졌다. 그러나 지산마을을 통과해 내려가는 길은 사실 통도사를 지나쳐 올라온 길만큼 감흥을 주진 못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내려가야 해 약간 위험하기도 했다. 그래도 서리마을 사람들이 곳곳에 심어놓은 농작물과 주변에 핀 꽃들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내려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대회를 주최한 하북면체육회 회원들이 도착점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빵과 우유, 물수건을 주며 완주를 축하해주었다. 사실 아침부터 공복이었고, 지갑에 1천원밖에 없었던 나에겐 빵과 우유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허겁지겁 오아시스를 들이키고 있을 때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오늘 걸었던 이 길대로 가끔 걷자꾸나! 함께 걸으니 더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니?”
이미 다른 참가자들의 마음에도 같은 마음이 퍼져나가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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