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열풍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지역의 역사와 특수성을 살린 옛길 복원 바람이 불고 있다. 이와 발맞춰 양산시가 낙동강변을 따라 황산잔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황산잔도 복원은 영남대로 가운데 양산을 지나는 구간이었던 옛길을 복원한다는 역사적 의미에다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새로운 관광 상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낙동강과 경부선 철도 사이를 통과하는 벼랑길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풍광을 극찬했던 임경대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수라도 속 배경인 황산베리 끝, 보물 제491호인 석조여래상에 얽힌 전설이 있는 용화사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 방안도 다양하다. 여기에 물금나루터와 김해 상동면을 오갔던 나루터도 있어 낙동강 정비사업 이후 수변 공간을 이용한 수상레저와도 연계할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전국의 우수사례를 바탕으로 황산강 베랑길 조성 사업이 가지는 역사ㆍ문화적 가치와 함께 통도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 양산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조명해본다.
글 싣는 순서
1. 베랑길로 다시 태어나는 낙동강 절경 황산잔도
2. 충북 괴산: 산과 숲, 물이 어우러지는 산막이옛길
3. 경북 문경: 옛길의 대명사 문경새재길
4. 강원 평창: 자연 모습 그대로, 오대산 천년의숲길
5. 황산강 베랑길의 성공적인 복원을 위해ⓒ 양산시민신문
경북 문경: 옛길의 대명사 문경새재길
문경새재는 직접 가보지는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길이다.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이 고개는 조선 시대 영남과 기호를 잇는 영남대로의 중심으로, 사회·경제·문화 등 문물의 교류지이자 국방의 요충지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흔든 고개’,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 사이(間)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 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과 민초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뒤에는 주흘관과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해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 민요 등으로 이름난 곳으로, 조선 시대는 물론 근현대사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서려 있다.
최근에는 옛길박물관과 드라마 오픈 세트장, 자연생태공원, 야외공연장, 유스호스텔, 사계절 썰매장이 들어서면서 역사와 문화, 자연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최고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옛길 복원의 방향성 제시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에 있는 문경새재길은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옛길 복원과는 개념이 다르다. 사라졌던 옛길을 현대에 맞게 ‘걷기 좋은 길’로 되살린 것이 아니라 조성 이후부터 그 역사는 고스란히 간직하며 발전해왔다. 이런 점을 볼 때 최근 복원되고 있는 전국의 옛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다. ⓒ 양산시민신문
문경새재길의 역사는 조선 태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대로가 개척되면서 이 고갯길이 처음 열렸으며, 1594년 선조 때 제2관문인 조곡관을 설치하고, 1708년 숙종 때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3관문인 조령관을 설치하면서 군사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담당해왔다.
1966년 문경관문을 사적 제147호로 지정하고, 1981년 문경새재 주변 5.5km를 도립공원으로, 이듬해인 1982년에는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흘산(1천106m)과 조령산(1천026m) 사이로 난 6.5km의 영남대로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귀중한 생태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수많은 문화유적과 어우러져 걷기 좋은 길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역사성 띤 숲 길
험하기로 유명했던 문경새재길은 지금에 와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각광받고 있다. 한해 100만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주말이면 인파의 물결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입구에 들어서면 이내 옛길박물관이 나타난다. 2009년 개관한 옛길 박물관은 옛길을 주제로 한 박물관답게 이와 관련한 유물과 사료가 가득하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500m 정도 걸어가면 문경관문 가운데 제1관문인 주흘관이 나오는데, 본격적인 걷기는 이때부터다. 문경새재길은 마사토라고 불리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이 길은 신발을 벗고 천천히 걸어도 좋은데, 맨발로 걷는 사람을 위해 발 씻는 곳이 별도로 마련돼 있고, 화장실에도 실내화가 준비돼 있다.
주흘관을 조금 지나면 문경새재 드라마 오픈 세트장이 있는데, 7만㎡ 부지에 130동의 건물이 들어선 국내 최대 규모의 촬영장이다. 경복궁과 동궁, 궐내각사, 양반촌, 서민촌 등으로 재현된 세트장은 옛길과 함께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주요 관광자원으로 한몫하고 있다.
주흘관을 지나 제2관문인 조곡관까지는 3km다. 고갯길이지만 경사가 낮아 쉬엄쉬엄 걸어갈 수 있다. 옛 선비들이 다녔다는 옛길이 등산로 쪽으로 나있지만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흘관에서 조곡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나그네들의 숙소인 조령원터와 신구 경상도관찰사의 교인처인 교귀정, 용인 오른 곳이라고 전해지는 용추(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최후를 맞은 곳으로 유명), 45m 높이에서 떨어지는 3단 인공폭포인 조곡폭포 등을 만날 수 있다.
제2관문인 조곡관을 지나면 인적이 뜸해진다. 관광객 대부분이 주흘관에서 조곡관까지 걷는 코스만 선택한다.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갈 경우 왕복 13km인데, 가볍게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다.
하지만 계곡을 흐르는 청명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기에는 조곡관부터 조령관까지 3.5km가 제격이다. 고즈넉하게 이어지는 길은 숲이 우거지면서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조곡관을 들어서면 곧바로 조곡약수가 있는데,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넘나드는 이들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주는 약수로, 수온이 일정해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조곡관에서 2.5km가량 걸어가면 마사토가 대로에서 벗어나는 장원급제길이 있다. 이 길은 옛길(문경새재길) 속의 옛길로,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영남은 물론 호남지역의 선비들까지 먼 길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당시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특히 이 길을 많이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편, 주흘관에서 시작한 마사토길은 조곡관을 지나 조령관까지 이어지는데, 이 길이 포장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은 1970년대 중반 문경을 순시하다 무너진 성벽 위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박정의 전 대통령이 차량 통행을 금지시킨 덕이라고 한다.
옛길은 지역의 문화유산ⓒ 양산시민신문
옛길과 관련한 길 문화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경새재길은 아름다운 길이 간직한 상품성이 길 문화와 함께 역사성과 결합했을 때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옛길 복원이 단순히 옛길을 되살려 지점과 지점을 잇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저편을 돌아 그 길을 밟았던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의 문화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