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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스스로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오피니언

스스로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405호 입력 2011/11/22 10:03 수정 2011.11.22 09:36



 
ⓒ 양산시민신문 
정치인이나 지도층에게는
남다른 도덕관 요구된다
국가 경제 어려울수록
국민 위한 배려 생각해야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천500억원 상당의 사재를 기부하기로 한 이후 정치권과 국민의 반응은 뜨겁다. 본인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뉴시스와 모노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양자간 대결에서 47.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 전 대표는 42.0%를 얻었다. 안 원장은 또 다자간 대결에서도 박 전 대표와 나란히 33.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호남에서의 안 원장 지지가 몰리는 현상이다. 지난 8일 코리아리서치가 호남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33%를 얻어 13.4%에 그친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9.2%),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8.3%)을 제쳤다.

1천500억원 기부효과인지 모르지만 안철수 원장의 정치적 행보가 프로 솜씨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내년 초 출간 예정인 ‘안철수 에세이집’의 출시 전후에 국민에게 미치는 반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안철수의 사재 기부 발표가 왜 그렇게 큰 호응을 받는가에 대한 답은 무의미하다. 이전에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집안의 사재 기부 발표가 있었지만 이만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자신이 일군 개인회사에 가까운 기업의 보유 주식 절반을 내놓기로 하였고 그 금액이 재벌기업의 그것에 견주어도 될 만큼 큰 금액의 기부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안 원장은 사재 기부 발표를 하면서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기성 정치인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을 이 말은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무감각한 우리 국민성에 기대어 소리 없이 녹아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지역에서는 정치인과 관련된 경조사가 시민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유명 연예인을 사회로 앉힌 예식장에는 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시민의 대변자라는 시의원의 혼사로는 지나친 면이 있다는 일각의 비난은 어쩔 수 없다. 또다른 상사(喪事)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다. 현직 시장의 장모상인 만큼 검소한 빈소를 기대했던 시민들은 줄줄이 늘어선 조화(弔花)의 물결을 보고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주 중 한 사람의 혼사가 예정되어 있는 바람에 부득이 5일장으로 늦추어 잡은 것도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에게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한때 서울시장으로 봉직했던 조순 교수가 하루는 출근한 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비서 한 명만을 대동하고 외출하였다. 청내 아무도 몰랐던 그 날은 자신의 아들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양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은 지난해 모친상을 치르면서 일체의 부조금을 사절했다.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는 남다른 도덕관을 요구하게끔 되어 있다. 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출사를 한 것이지 지위를 이용해 덕을 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다. 기업가도 국가와 사회구조 속에서 이익을 보는 만큼 필요할 때 베풀고 고통을 분담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번져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는 1%의 부자들에게 편중돼 있는 부에 대한 불평등의 항의에서 출발한 것이다. 요즈음 외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뉴스 중 하나는 부자들의 증세(增稅) 요구다. 미국의 백만장자 20여명이 의회로 몰려가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건실한 국가재정을 위한 애국 백만장자들의 모임’ 소속인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세금을 올리라”는 내용의 서한을 들고 의회를 찾았다. 이들은 도덕적 관점에서보다 국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덕을 본 부자들이 더욱 앞장서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이 그거다.

프랑스 광고대행 업체인 퓌블리시스 그룹의 모리스 레비 회장은 최근 “우리 사회의 최고 특권층이 더 큰 몫을 져야만 대다수 보통사람들이 개혁의 고통을 견딜 만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부자들의 증세를 주장했다.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며,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혀라고 훈시했던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언제 꽃피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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