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이나 대형마트가 들어온다고 상인들이 밤새 지키고 있는 모습을 TV에서 볼 때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발버둥이라도 치잖아요.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뜨고 당한 꼴 아닙니까. 앞날이 막막합니다”
“장사 좀 되느냐?” 짧은 물음에 끝도 없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격앙되게, 어떤 이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속에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박함과 위기감이 묻어있다.
동면 금산리 1480번지 일대에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지난해 12월 1일 문을 열고 운영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개장한 뒤 하루하루가 고통인 사람들이 있다.
동면 석ㆍ금산지역에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상인들이다. 불과 국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개장하면서 이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위협받고 있다. 적게는 20~30%, 많게는 50% 가까이 매출이 떨어졌다.
과자와 음료는 물론 간단한 부식과 과일,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한 슈퍼마켓 상인은 “장사가 잘될 리가 있나. 한 마디로 죽을 지경”이라며 “이곳에서 장사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장사가 안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슈퍼마켓 상인은 “은행 빚을 내서 가게를 인수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는데,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개장한 뒤 2달 동안 매출의 50%가 줄었다”면서 “거래처 대금 결제는 물론 은행 이자도 못 낼 지경”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같은 현상은 양산은 물론 전국의 우수한 품질의 농ㆍ축ㆍ수산물을 전문적으로 유통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민간 업체에서 수탁ㆍ운영하면서 사실상 일반 대형마트와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판매 품목이 겹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는 동네슈퍼는 바로 옆에 개장한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일과 신선식품도 함께 취급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한 슈퍼마켓 상인은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상인은 “처음에는 근처에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가격만 적당하다면 우리도 센터에서 도매로 농ㆍ축ㆍ수산물을 떼와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상권을 위협하는 대형마트였다”며 “미리 알았다면 인근 상인들과 연합해 시위라도 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개장하면서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은 그나마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조직이나 단체도 없는 동네슈퍼 상인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농ㆍ축ㆍ수산물의 유통구조 혁신을 통해 시민들에게 저가의 신선식품을 적기에 공급하고, 지역 농업인들의 판로 확보와 소득 증대에 도움을 주겠다던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설립취지와는 달리 골목 상권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