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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적선은 못할 망정 쪽박을 깨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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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적선은 못할 망정 쪽박을 깨서야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414호 입력 2012/01/31 10:23 수정 2012.01.31 09:33



 
 
교육경비보조조례 개정으로
효암고 기숙사비 지원 중단
갑자기 수십만원 더 부담케 된
학부모들의 원성 당연하다


설 전에 열린 시의회 임시회에서 개정처리된 <교육경비보조에 관한 조례>에 따라 효암고가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지난해 초부터 기숙사를 개관ㆍ운용하고 있는 효암고에 대하여 기숙사비를 지원하는 근거가 삭제됨에 따라 올해 당초예산에 1억원을 계상해 놓고도 이를 지급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정은 우리 신문 관련 기사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지만 지자체 법규 제정과 예산심의를 기본 임무로 하고 있는 시의회에서 이런 자가당착적인 처리가 이루어졌다는 데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문제의 발단은 집행부인 시가 <교육경비보조에 관한 조례>의 개정안을 상정한데서 출발했다. 시는 자율형 공립고와 우수고 육성에 관한 지원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상정했다. 현재 효암고에만 기숙사비가 지원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양산고와 다른 우수고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의회에서는 자율형 공립고에 대한 지원이 중복되고, 우수고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명확하지 못함을 들어 반대하고 나섰다. 시와 의회가 대립하는 사이 애꿎은 효암고 기숙사비 지원 예산이 거론돼 학교간의 형평성을 이유로 함께 삭제되고 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시의회는 상임위원회에서 논란 끝에 특정 학교에 대한 지원 조항을 모두 삭제처리하면서 기숙형고에 대한 지원 조항을 삭제하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당사자인 효암고의 기숙사 입사생 부모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설득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뒤늦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의회가 내놓은 변명은 법제처의 유권해석이었다. 애당초 상위법과 상충하는 조항이었기에 처음부터 잘못된 지원규정이라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러면 잘못된 법을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예산을 편성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면 왜 임시회 도중에는 그런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는가. 형평성이 어긋난다며 특정 학교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해 놓고는 변명거리를 찾다가 최초의 원죄를 찾아낸 것이라면 시민을 우롱해도 한참 우롱하는 것이다.

효암고의 기숙사는 전형적인 선심행정의 표본이다. 지역 명문고 육성이라는 유일무이의 과제에 집착하다 보니 10억원이라는 시 예산을 들여 기숙사를 건립도록 지원했다. 하지만 학교재단의 부담 능력이 없다 보니 진행이 되지 않다가 국회의원까지 동원돼 국비와 도비 31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초 기숙사를 개관한 효암고는 학부모의 기숙사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경남도교육청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준다.

도교육청은 2010년 7월 기숙형 고등학교 지정과 함께 해당 학교가 소재한 교육청과 시ㆍ군청에 지원조례의 마련과 재정적 지원을 부탁하는 협조공문을 발송하였다. 이에 따라 각 시ㆍ군에서는 교육경비보조에 관한 조례 개정작업을 통해 ‘교과부장관이 지정한 기숙형 고등학교에 대한 학생부담 기숙사비 지원사업’을 신설하고 지역 여건에 따른 예산 편성에 나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거다. 농어촌에 위치한 학교에만 특례법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한 처사다.

시민들의 살림살이에 직접 영향을 주는 행정행위에 대한 신중한 처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물며 불과 6개월 전에 만들어진 조례 규정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한다는 입법행위를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하는 건 시민을 기망하는 것이다. 또한 조례 개정에 나섰던 시 당국도 안일한 업무처리 과정을 자책해야 한다. 분노한 학부모들이 항의 방문할 때까지도 앞뒤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올해는 이미 예산이 편성돼 있으니 어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조례를 근거로 성립된 예산인데 그 근거가 되는 조례에서 지원규정을 삭제하였다면 당연히 집행할 수 없는 것이다.

지역 고등학교를 명문으로 육성시키자고 입만 열면 떠드는 교육당국이 제대로 된 명문고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해마다 우수한 중학생들이 타지로 빠져나가고, 지역 내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신입생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어렵사리 만든 기숙형고나 자율형 공립고가 제대로 지정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한편 타 학교에 대해서도 우수고가 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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