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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고래를 기다리며
오피니언

고래를 기다리며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2/04/09 09:18 수정 2012.04.09 09:18



 
 
유권자를 부모 섬기듯
헤아리겠다는 초심 잊지 않고
양산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만들 새로운 인물을 기대함


이제 우리의 손끝을 떠난 한 장의 투표용지는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킬 것이다. 시민의 선택을 받은 승자는 오색의 꽃바구니에 담긴 환호에 잠시 질식할 것이고, 반대편에 있는 자는 탄식과 회한의 긴 자루를 선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다. 짙푸른 파도처럼 크게 솟구쳐 오르는 국민들의 갈망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이성적 냉정함을 강요하리라.

제헌국회가 개원한 지도 60년이 훌쩍 지났다. 인생 60이면 이순(耳順)이라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정신세계를 갖추겠지만 국회의사당 안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물불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작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대까지 내려온 국회의 기수에 비추어 여야의 자리는 더러 바뀌었지만 백성의 뜻을 저버리는 건 여전하다.

여론의 물줄기에 의해 선택된 의원들이고, 권력의 향배에 따라 여야가 가려진다. 하지만 그 두 단어에서 ‘여’의 뜻은 같지 않다. 여야의 ‘여’는 ‘與’로 ‘더불 여’자다. 정부와 함께 가는 정당이라고 해서 여당이라고 부른다. 여론의 ‘여’는 ‘輿’로 ‘수레 여’ 자다. 수레를 끄는 사람 즉, 일반 서민이다. 여론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의견인 셈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결정체인 국회의원은 그 자체로 독립된 헌법기관인 동시에 그를 뽑아준 국민들의 대변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 초선 국회의원의 역할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미할 정도다. 정당 내부조직의 파워가 너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스템보다는 보스나 계파정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정당의 이념이나 기조가 수시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처음 국회에 진출한 신인으로서는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자신을 선택해 준 유권자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어떤 입법을 할 것인지 연찬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당론이라는 미명 아래 거수기로 전락한다든지, 대중적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내몰리지는 않을까. 자신이 발의한 서민경제에 관한 법안들이 창고에 쌓여있는데도 기한 내 처리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까.

시민들은 순진하게도 당선만 되면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싣고 마는 선량(選良)에게 배반감을 가질 줄만 알았지 그들에게 진정 큰 인물이 되어달라는 열망을 보태주지 못한다. 이번에 뽑는 인물이 우리 고을의 곳간을 운영하는 지방관리가 아니라 우리를 대표해서 국가의 동량(棟梁)이 되어줄 큰 인물이란 걸 잊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고장 양산에서 근대 이후로 변변한 인물이 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인물 키우기에 소홀했다는 증거다.

크게 보면 국운(國運)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국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세계를 이끄는 지도급 국가 정상들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회담을 갖는다. 국제사회의 3대 기구 중 두 개의 수장을 한국인이 맡거나 맡을 예정이다. 경제적으로도 국가의 신용등급이 상승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근면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고속성장을 해 온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 간에 다툼은 끝이 없다.

이제는 초선의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영역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계파나 이권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타성에 젖은 정당의 관행에 대항하는 의원, 당의 정체성이나 정책이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고 지역정서에 반한다면 당당히 맞서는 의원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 당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국회의원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정의에 입각한 신념은 거칠 것이 없다.

이번 선거로 우리는 젊고 새로운 인재를 국회로 진출시키게 되었다. 참신하다는 것은 구태를 탈피한 것이다. 배지를 달자마자 국민을 아랫것으로 치부하고 특권층으로 둔갑하는 후안무치를 혁파하라. 부모 모시듯 섬기겠다던 그 약조를 잊지 않고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심정으로 유권자의 아픔을 헤아린다면 초심을 지킬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정쟁에 눈먼 몰염치의 정치를 털고 국민의 뜻을 섬기는 맑은 피를 가진 초선의원을 기대한다. 쫌팽이가 아닌, 대의를 품은 고래를 희망한다. 양산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 큰 인물이 되어준다면 몇 번이고 찍어줄 것이다. 왜 못 하겠는가.

베케트의 희곡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고도(Godot)는 영원히 오지 않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고래는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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