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이루기도 전에 돌아온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었습니다”
지난 2010년 11월 입국한 우즈베키스탄인 슐리(34) 씨는 입국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해 9월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한국 땅을 밟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슐리 씨 본인이 미등록 체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올해 2월 임금체불로 고용센터를 찾은 날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외국인근로자가 근무지를 옮길 경우 해당업체 사업주는 한 달 내 관할 고용센터에 ‘사업장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사업장변경 신청 후 외국인근로자는 3개월 내에 회사를 선택해 입사해야 한다.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한 업체 역시 고용 신고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슐리 씨의 경우 지난해 6월 20일 김해에서 양산으로 옮기면서 사업장변경 신청을 했기 때문에 석 달 뒤인 9월 20일까지 일할 곳을 찾아 입사만 하면 됐다. 슐리 씨는 이미 어곡산단에 위치한 ㅇ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어 걱정할 일이 없었다. ㅇ업체 대표가 고용센터에 신고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ㅇ업체 대표는 걱정하지 말라며 슐리 씨를 안심시켜 왔다.
하지만 정작 ㅇ업체 대표는 슐리 씨의 고용을 신고하지 않았다. ㅇ업체는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록 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는 회사임에도 불구, ㅇ업체 대표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슐리 씨를 속여 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슐리 씨가 임금체불로 민원을 제기하면서 밝혀졌다. 문제는 명백한 사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슐리 씨가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전후 사정에 관계없이 슐리 씨는 사업장변경 신청 후 3개월 내에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직장을 다닐 수 없다는 것이 고용센터의 답변이다.
반면 슐리 씨를 불법으로 고용한 ㅇ업체의 경우 흔한 벌금형조차 없이 앞으로 외국인근로자 고용업체로 등록해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라는 ‘시정지시 조치’와 ‘등록 이후 2년 이내에 재적발 시 고용제한’이라는 통보를 고용센터로부터 받는 데 그쳤다. 억울한 외국인근로자는 강제출국 당할 위기에 놓여 있는데 정작 취업사기를 일삼은 업체는 아무런 법적 책임조차 질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한편 슐리 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은 고용센터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센터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슐리 씨가 주의를 소홀히 하여 정해진 기간 내에 근무처 변경허가를 받지 못하였음으로 출국 대상’이란 내용뿐. 고용센터 관계자는 그나마 강제출국 보다는 자발적 출국을 통해 재입국의 기회를 찾아보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양산에만 2천여명의 외국인근로자가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당당한 산업 역군으로 일하고 있는 가운데 낯선 이국땅에서 외국인이란 이유로 사기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강제출국될 처지에 놓인 이번 사건은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 주소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