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비상대비, 건성으로 해서는 안된다..
오피니언

비상대비, 건성으로 해서는 안된다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2/05/29 10:12 수정 2012.05.29 10:12



 
 
형식에 그치고 있는
비상대비훈련 이대로 안돼
실질적인 국민행동요령과
피난시설, 장비 미리 확보해야


예약진료차 도심의 한 병원으로 가는 길에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렸다. 네거리 신호만 지나면 병원 주차장인데 그 직전에 유도요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8차선 도로에 정지된 차량 사이로 적막감이 흐르는 20분 동안 차 안에서 아무 것도 못 하고 공습경보가 해제되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경험은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한두 번 당해봄직한 일이다.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고, 지금도 철책으로 남북이 갈라져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임을 감안하면 이런 훈련 쯤이야 순순히 응할 수 있다. 문제는 너무 형식적인 훈련 진행에 있다.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간대에 공습훈련경보로 시작되는 민방위훈련에서 실질적인 대피훈련이나 방재훈련이 적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훈련 효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몇 해 전 서해 백령도에 북한군의 기습포격사건이 발생했다. 주민들의 보금자리는 물론 면사무소 뒷마당에까지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주민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다. 많은 섬사람들이 육지로 탈출하는 소동을 벌였고 남은 사람들도 두려운 밤을 견뎌야 했다. 그 당시 TV 화면에 비친 방공대피소 모습은 우리 정부의 비상대비체계가 얼마나 구닥다리인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60년 전 6.25 전쟁 때 만들어진 것 같은 지하 방공시설은 창도 없는 시멘트 공간 그 자체였다. 거기에는 비상식량이나 침구는 물론이고 전기와 난방시설마저 제대로 가설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국민들을 그런 곳에 피해 있으라고 안내하는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전략상 적대관계는 북한이 유일하다. 지척에서 대치하고 있는 백령도가 그러할진대 후방의 내륙에서는 말해 무엇하리오.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차를 세우고 그 속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는 행위가 과연 실전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포탄이 날아와도 춥고 어두운 방공호보다 내 집에 숨어 있겠다는 주민들을 회유하기는 쉽지 않다. 전시를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면, 당연히 실질적인 대피요령과 대응수단을 교육시키는 것이 옳다.

최근 부산의 반핵 환경단체들이 고리원전 사고 발생에 따른 피해 정도를 예측하는 실험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한 도상 시뮬레이션 결과였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각성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환경단체들이 수명을 다한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중지하고 즉각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지난 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바 있는 우리로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국가적 대응방안을 모색해 주길 바라고 있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설령 발생한다고 해도 우리 지역에 그와 같은 피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기장군 지역과 우리 시 사이에 있는 높은 산들에 의해 쓰나미 피해를 입을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원전 폭발로 인해 유출되는 방사능은 공중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해 후쿠시마 사태에서 일본 정부는 원전에서 반경 20km 이내에는 즉각 대피명령을 내렸고, 20~40km 내에는 대피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대피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하였다. 우리 시는 9만 인구가 살고 있는 웅상지역은 물론, 시청과 신도시 지역도 고리원자력발전소 반경 30km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위험을 느끼고 대비하는 것은 일종의 동물적 반응일 수도 있다. 그 반응은 추호의 머뭇거림도 용납하지 않는다. 도심의 상공에서 정말로 공습이 벌어진다면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라디오나 틀어놓고 있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거리의 곳곳에 대피소를 만들고 얼마나 빨리 행인들을 소개시키는가 하는 훈련의 진행이 필요하다. 인명피해와 화재 등에 대비한 구호요원들의 즉각적인 대응태세를 점검해야 한다. 원전사고로 방사능 유출이 예상될 때 해당 반경 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비상 방독면과 구급약은 어디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지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1980년대 군청 직제에는 민방위업무를 관장하는 과가 있었다. 지금은 총무국의 한 담당이 맡아서 하고 있다. 그만큼 전쟁의 위험성이 줄어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강성대군 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한 우리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원전 등 주요 국가시설에 대한 테러공격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비상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