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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여름날의 취중진담(醉中眞談)..
오피니언

여름날의 취중진담(醉中眞談)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2/07/24 09:13 수정 2012.07.24 09:13




 
 
끊임없는 지도층 비리 소식
무더위에 지친 국민 탄식만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서민들의 삶 모른 채 말라
그들이 이 나라 꾸려온 것을


K형. 며칠 전에는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오랜만에 농어회를 안주삼아 ‘소맥폭탄주’를 한 잔 했습니다. 태풍이 올라오면 고기잡이도 못 하니만큼 그 전에 통음(痛飮) 한 번 하자는 것이었지요. 언제부턴가 유행하는 소주들은 하나같이 주정의 농도를 낮추어 물인지 술인지 분간 못할 정도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니 주량이 그다지 많지도 않은 저마저도 몇 잔의 소주로는 취기를 느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여름의 별미라고 농어 한 마리를 잡기는 했습니다만, 굳이 활어회가 아니더라도 안주거리는 많았습니다.

우리네 서민들이야 회 한 접시 시키면서도 메뉴판의 가격표를 질끔찔끔 곁눈질 하면서 주머니 사정과 어림해 보곤 하지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들의 돈 개념은 정말 상상불허 아니겠습니까.

7억 정도는 장농에서 발견되더라도 축의금 받은 돈 모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하면 되고요, 박스 채 받은 것이 탄로나더라도 나중에 가서는 시효 지난 정치자금 받았다고 하면 어쩌겠습니까. 받들어 모시던 대통령도 이제 끈 떨어진 갓 신세로 레임 덕 걱정이나 하는 처지 아닙니까. 오죽하면 친형의 구속도 막지 못한 터인데 그렇게들 발뺌하고 보는 게 상수이겠지요.

도대체 국회의원이 무언데 그렇게 당당하고 잰다는 말입니까. 아니 검찰이 불러도 못 나간다고 하면 장땡입니까. 무교동 대로변에서 포장마차 끄는 무지랭이는 완장 찬 단속원 얼굴만 보여도 간이 철렁 내려앉는 판인데, 하물며 경찰이나 검찰에서 부르면 안 가고 배길 재주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체포 특권이니, 국회 동의니 하는 야릇한 법률용어 뒤에서 권력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투표소에 갔던 걸 후회하게 됩니다.

B.H가 무엇인지는 아시겠지요. 블루 하우스, 즉 청와대의 약자랍니다. 대선정국에 돌입하면서 묻히다시피 한 민간인 사찰 관련자의 보고서나 메모에 등장하는 암호입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에 대한 뒷조사나 일삼던 그들은 저축은행의 로비 대상으로 또 불려가고 있습니다.

하기야 거물급 정치인만 받으라는 법은 없지요. 청와대 가신그룹도 ‘문고리 권력’이라 하여 최고 결정에 한 몫 하리라고 생각해서 뇌물을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K형, 이제 이런 사람들을 사회 지도층이라 부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도층이라 하면 그에 걸맞은 도덕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지랭이 국민들이 고통 속에서도 나름 선악의 기준을 세워 선량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반면, 정계와 재계의 권력자들은 법 알기를 우습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청문회 때마다 구차하게 변명하는 그들을 보며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비단 나 혼자일까요. 조그만 지방에서도 선출직 공무원들의 위상은 대단합니다. 그들이 권력의 끈을 놓기 싫어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의 부패는 그 전파력으로 해서 더욱 심각하다고 합니다. ‘썩은 사과는 이웃을 해친다’는 영국 속담은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가장 밑바닥 서민들의 주머니돈을 모아 불려준다는 저축은행들이 오너의 사금고로 전락해 그들 일가의 엄청난 사치를 충당해주는 도구가 되고, 급기야는 정치권에 돈 박스를 싸들고 다니면서 뇌물로 사용될 때, 돈을 찾을 길이 막힌 서민들의 분노는 생각하지도 않았겠지요.

대통령 친형의 구속 집행 행차에 넥타이를 잡아 당기고, 계란을 던지는 그들의 화풀이는 차라리 서럽기만 합니다.

해방 이후 30년을 전쟁과 기근, 산업의 부족으로 힘든 세월을 보낼 때에도 우리는 크게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이웃들이 같은 형편이었고, 열심히 노력하면 궁핍을 벗어날 희망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부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 시기와 질투, 타도의 대상은 아니었지요. 그 다음 40년을 우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모르지만, 화려한 모래성 아래 둘로 나뉜 국민들의 자화상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령화 시대의 슬픈 초상은 또 있습니다. 이제 60줄에 들어선 역전의 용사들은 2/3 이상이 노후대비라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젊어서는 뼈 빠지게 일하고, 자식 키워놓으니 밥벌이도 제대로 못 해 캥거루처럼 주머니 안에서 내쫓지 못 하고, 나이 드니 오라는 데도 없고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도 못해 구멍 난 주머니만 만지작거리는 게 대부분의 베이비 붐 세대의 초상입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우리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합니다. 일부 계층이 사회 전체의 부와 권력을 독식하게 되면 그만큼 양극화 현상이 심해집니다. 그들이 도덕성마저 잃어버린다면, 과연 이 사회가 안전하게 굴러가겠습니까.

K형. 작취미성(昨醉未醒)이라 횡성수설해 보았습니다. 휴가 갔다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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