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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꽁트 - 하우 씨의 여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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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하우 씨의 여름 휴가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2/08/07 13:27 수정 2012.08.07 01:27



 
 
피해갈 수 없는 불볕더위도
마음먹기 따라 견딜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으로
공공장소에서 예절 지킬 때
지혜로운 여름나기 가능해

하우 씨는 휴가 둘째날에도 늦잠을 자다가 벼락 떨어지는 소리에 그만 깨고 말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외동딸 소연을 앞세우고 허리춤에 양 손을 척 갖다붙인 아내의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흥, 토요일 일요일 끼워서 겨우 나흘을 휴가라고 받아놓고 이틀째 방콕하신다는 거예요”

제법 어린애 티를 벗은 딸을 위해 수영복까지 갖추었으니 동해안이나 부산의 해수욕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계곡에 가서 텐트치고 물놀이라도 시켜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아내의 채근이 이미 지난 주부터 계속됐다.

하지만 하우 씨는 이틀 내내 티브이와 씨름하며 거의 홧병이 날 뻔 했다. 런던 올림픽 중계 때문이라는 건 아내도 안다. 유도경기를 보다가 심판들이 금방 내린 판정을 부침개 뒤짚 듯 번복하는 바람에 선수보다 더 흥분했다. 다음 날 여자 펜싱 준결승에서는 시간을 잘못 재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는가. 4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오심에 대한 화풀이로 잠을 설친 탓에 머리가 맑지 않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하우 씨는 두말 않고 일어나 세면장을 향했다. 거울을 보니 이마에 수십 개의 땀방울이 맺혀있다. 덕계에 있는 지은 지 20년은 족히 된 5층짜리 빌라 1층은 동향이라 아침부터 이글거리는 햇볕이 방 안 구석구석을 휘젓고 있다.

겨울에 싼 값으로 에어컨을 살 수 있다고 아내가 유혹할 때 못 이긴 척 들을 걸 하고 후회해 보지만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들기다.

언감생심 에어컨이라니, 지난 연말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쉰 살도 안된 하우 씨도 퇴출될 뻔 했다. 웅상에 있는 공장 대부분이 현대자동차 부품 하청 공장이다. 그나마 1차 협력업체는 좀 낫지만 2차 하청으로 내려오면 수출 부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올 초 생산라인을 새로 받았는데 원청에서 투자비를 분담하라고 해서 사장은 죽는 소리를 해댔다.

매년 여름휴가를 주말 포함해서 5일은 받았고 휴가비도 새파란 배추 이파리 서른 장 씩은 받았는데 올해는 설비투자에 허덕이는 바람에 달랑 십만원을 균일로 받고는 회식도 없이 헤어졌다. 그러니 무슨 피서갈 기분이 나겠는가.

그러나, “자! 모두 준비해. 탑자골에 가자구” 소연이 제일 반긴다.

이미 수영복을 입은 채로 하우 씨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하우 씨는 다락문을 열고 먼지가 내려앉은 야영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등산을 좋아한 하우 씨는 제법 쓸 만한 텐트와 야외취사도구 등을 사놓고 있었다. 컵라면과 청량음료, 수박 등 먹거리를 아이스박스에 담고 있던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이렇게 늦게 가서 자리가 있을까요?”

“아니 이제 10시밖에 안 됐는데 누가 벌써 올라구”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우 씨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안 되면 저수지 아래 개울에서 놀지 뭐”

“거긴 물이 없단 말이예요” 아내의 대답이 까칠하다.

하우 씨는 서둘러 텐트와 물놀이 보트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딸애가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왔다. 프라이드는 소형차지만 트렁크가 제법 너끈하다. 아이스박스는 뒷자리에 싣고 20분 거리인 대운산휴양림으로 향했다. 야영데크가 30개나 되니 설마 자리가 없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는 탑자골로 꺾이는 갈림길에서부터 우려로 바뀌었다. 좁은 2차선 도로에 올라가는 차량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빈 야영데크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관리소로 직행했다. 하지만 직원의 말은 이미 다 팔렸단다. 빈 곳도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이 미리 잡아놓은 자리라 한다. 80년대 추석 귀성열차 예매하는 것도 아니고 새벽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리 찜하고 갔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신작로에서 쭈쭈바를 빨고 있던 소연이 귀를 쫑긋거린다.

“자리 다 나갔대. 그냥 계곡에서 놀다가 내려가자”

“내 이럴 줄 알았지. 남들은 새벽같이 설치는데 느긋하게 나와서 무슨…”

아내의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차 댈 곳을 찾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겨우 주차장 끄트머리 경계석을 타고 개구리주차를 한 뒤 아이스박스를 들어내는데 갑자기 뚜껑이 열리며 길바닥에 내용물이 쏟아진다. 시커먼 줄이 진하게 세로박힌 수박이 깨지면서 붉은 속살이 딸아이 초경처럼 부끄럽게 흩어진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름도 모를 조그만 개 두 마리가 나타나 흥건한 수박 깨진 물을 핥아댄다. 이 놈의 개들은 주인도 없나. 그러지 않아도 짜증나는 판에 개까지 약을 올려. 하우 씨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없이 훅 한 마디 내뱉는다.

“우쒸, 올 겨울엔 무슨 수를 써도 에어컨 한 대 들여놓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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