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폭염과 열대야였다. 더위에 잠을 이루기 쉽지 않은 참에 마침 런던과의 시차로 인해 새벽녘 올림픽을 관전하는 재미가 적지 않았다. 연일 들려오는 승전보는 무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제공하기에 충분했고, 손에 땀을 쥐게 한 접전은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했다.
22개 종목에 245명의 선수가 출전한 이번 런던올림픽은 13개 금메달에 종합 5위라는 큰 성과를 남겼다. 박태환ㆍ장미란 선수처럼 대회전부터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선수가 있었나 하면, 예상외의 금메달 획득으로 짜릿한 관전의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 선수도 많았다.
그러나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 그들을 단련시키고 훈련을 도와준 코치와 스태프 등 선수단 모두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들이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 여운을 이어가게 해 줄 양산사람들의 올림픽 이야기를 준비했다. 종목별 양산지역 선수와 감독, 동호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올림픽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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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종목’임을 재확인시켜준 한국유도다. 여기에 감동의 드라마까지 연출했다. 송대남 선수의 인생역정에 울고, 조준호 선수의 판정번복에 분노했고, 김재범 선수의 화려한 공격에 환호했다. 하지만 유도계는 판정번복으로 유도경기에 대한 신뢰를 잃어 유도 명성이 곤두박질칠까 우려했다고.
물금동아중 유도부 안철순 감독은 “유도복이 과거 모두 백색이었다가 현재 청색, 백색으로 나눠진 이유가 ‘보여지는 유도’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판정이 번복 된다면 유도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유도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오점이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올림픽을 지켜본 유도 꿈나무들도 할 말이 많다.
차성근 선수(-55kg급)는 “나 역시 오심판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한 번씩은 억울한 상황을 호소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판정이기 때문에 이 역시 판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불만을 품고 큰 소리 친다고 판정을 번복된다면 나는 신사의 종목인 유도에 대해 매력을 못 느꼈을 것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런던올림픽에서의 유도는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유도 꿈나무들 역시 경기를 보며 눈물을 훔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나혜 선수(-70kg급)는 “여자 유도의 희망이었던 정나은 선수의 경기를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초반 경기를 너무 잘해 금메달기대감이 커져 분명히 큰 부담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너무 잘 싸워줘서 같은 여자 유도선수로써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상욱 선수(-73kg급)는 “송대남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환호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김재범 선수 역시 시원스러운 공격으로 유도의 매력을 보여준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나도 올림픽 경기 같은 큰 무대에서 승리의 환호를 한 번 지르고 싶다. 내 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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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9번의 올림픽 도전과 64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린 끝에 역사상 처음으로 메달 획득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은 것. 새로운 역사를 쓴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향한 응원과 환호의 메시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처럼 런던올림픽은 축구인이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순간으로 기억하게 됐다. 양산지역 동호인들의 반응도 남다르다.
청어람조기회 회원인 최원우(39) 씨는 “무엇보다 영국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전력상으로는 지는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보란 듯이 승리를 따냈다. 역시 축구는 경기를 해봐야 아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번의 경기와 역대 한일전 축구 경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꼽히고 있는 동메달 결정전 역시 축구동호인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청어람조기회 감독을 맡고 있는 강상호(43) 씨는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억압했던 일본을 이겼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금메달보다 숙적 일본을 이기고 동메달을 딴 기쁨이 더 큰 것 같다”고 관전 소감을 밝혔다.
준결승전이었던 브라질과의 경기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강 씨는 “브라질이 우세한다는 얘기는 많았다. 하지만 단체 경기는 분위기가 좌지우지 한다. 만약 김보경 선수가 패널티킥을 얻어냈더라면 브라질전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보경 선수는 브라질 패널티 지역에서 상대 수비수에 정강이가 채이는 파울을 당했지만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강 씨는 “이번 올림픽 경기를 뛴 선수들의 나이가 젊은 만큼 이 친구들이 기량을 더 쌓아서 앞으로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 등 큰 대회에서도 좋은 경기를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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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마린보이, 역시 ‘박태환’ 이었다. 오심판정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은메달 2개를 획득해 세계적 특급 스타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영동호회 U.S. 돌핀스 박현선(39) 씨는 오심판정으로 박태환 선수의 결승진출이 좌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그 심정을 이해했다고 한다.
박 씨는 “얼마 전 여수에서 열린 철인경기에서 사이클 신발을 놓고 가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일을 겪었다.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더욱이 자신의 실수가 아닌 심판의 오심으로 4년 동안 기다려 왔던 대회를 망친다면 정말 피눈물이 흐를 일이다”고 당시 피말리는 박태환 선수의 심정을 헤아렸다.
한국 수영계엔 ‘포스트 박태환’이라 부를 인물이 없다. 이번 올림픽엔 박태환을 제외하고도 14명의 한국 선수들이 출전했다. 하지만 남자 수영의 경우 박태환을 제외하면 준결승에 오른 이가 없다.
정다래 등 준결승까지 오른 여자 선수들도 결승 스타트대엔 서지 못했다. 박태환이 이대로 은퇴할 경우 당장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한국은 수영에서 노메달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채정웅(40) 씨는 “이번 올림픽에서는 단연 쑨양의 활약이 돋보였다. 2m에 가까운 신장에 350mm 발사이즈를 가졌다고 한다. 펠프스도 마찬가지다. 체격에서 한국선수들이 따라 가질 못한다. 그렇다면 박태환과 같은 기술로 승부하는 선수가 많이 배출돼야 하는데 이렇다할 후발주자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때문에 수영에 대한 생활체육의 저변확대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강정현(41) 씨는 “박태환 선수의 영향으로 수영에 흥미를 가지는 국민들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이 때 수영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양산은 50m 길이의 수영장이 없다. 수영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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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 최종 10발을 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격이다. 50m 권총 결선에서 진종오ㆍ최영래 선수의 뒤바뀐 메달 색깔이 그랬고, 소총 3자세에서 김종현 선수의 짜릿한 은빛 반전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런던올림픽에서 새롭게 써진 한국 사격의 역사를 지켜본 양산대 사격선수들의 감흥은 남다르다.
양산대 사격팀 고경아(19, 10m 공기소총) 선수는 “올림픽 처녀 출전한 김장미 선수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림 없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 가는 배짱에 놀라웠다. 사격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 사격에 재도전 한 이석원(32, 10m 공기소총) 선수는 누구보다 이번 올림픽이 주는 교훈이 크다고.
이석원 선수는 “사격을 포기하고 사진영상학과에 진학했지만 늦은 나이에 다시 양산대에 편입해 사격에 재도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빛낸 선수들의 활약은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을 안고 경기해야 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국가대표선발전을 직접 지켜본 양산대 이동효 감독은 선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놨다.
이동효 감독은 “최영래 선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대명 선수와 출전권을 두고 막판까지 경쟁을 벌였다. 가정을 둔 가장으로써 책임감도 크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노력파 선수였기에 결국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10m 공기소총에서 결선에 진출하지 못해 미안함과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50m 권총에서 진종오 선수에게 역전 당하고 은메달을 땄을 때 흘린 눈물은 아마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것 같다”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최 선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오심판정으로 얼룩졌던 런던올림픽이었지만 사격만큼은 오로지 실력만이 통했다.
이 감독은 “과거 종이표적지였을 때는 세계대회에 가면 다른 나라 선수들의 표적을 보기에 바빴다. 제대로 점수가 책정되고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표적지로 어떤 경기보다 신속ㆍ정확하게 점수화된다. 사격 선수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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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담은’ 태권도는 올림픽 정신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선수와 심판의 깍듯한 예절경기는 기본이고 이의를 제기할 때도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카드를 건네고, 경기 후 상대편 코치에게 달려가 인사를 하고, 선수가 다치면 코치, 의료진 모두 신발을 벗고 경기장에 들어온다.
물금동아체육관 김진홍 관장은 “비록 런던올림픽은 금 1개, 은 1개의 성과에 그쳤지만 태권도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며 세계 속의 태권도로 자리매김했다. 편파판정과 오심 등으로 얼룩진 런던올림픽에서 예절과 예의를 품은 태권도는 단연 빛났다”고 말했다.
상북동아제일체육관 강기훈 관장 역시 이번 올림픽에서의 태권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강 관장은 “세계 197개국 나라에 태권도가 보급된만큼 이번 올림픽은 더는 무도가 아닌 스포츠로서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점수를 따고 나면 뒷걸음치기 바빴던 예전의 풍경과는 달리 공격 지향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관중들의 환호 속에 경기가 치러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평산동아체육관 이진희 관장은 종주국 한국의 태권도가 점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이 관장은 “얼굴공격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면서 키가 큰 선수가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 실제 이번 올림픽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점수에 너무 연연하는 경기를 펼치다 보니 심지어 어떤 외국선수는 몸통을 막고 겨루기를 하는 자세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활약은 빛났다. 메달보다 값진 감동의 경기를 보여줬다.
강기훈 관장은 “이대훈 선수 아버지가 ‘금메달을 못 따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8kg을 감량하고 최선을 다한 이 선수이기에 국민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올림픽 은메달. 정말 값진 메달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서창명문체육관 성부평 관장은 “학교체육이 아닌 도장에서 국가대표가 선발되는 종목이 바로 태권도다. 때문에 도장문화의 활성화가 곧 엘리트선수 육성의 발판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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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배드민턴 대표팀을 보는 지역 동호인들의 반응은 ‘안타까움’이었다. 우선 8명의 선수가 실격된 ‘고의패배 논란’이 화두에 올랐다.
삽량배드민턴클럽 이민호 회장은 “전략상 코치 스태프에서 분명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라며 “배드민턴 말고도 다른 종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배드민턴이 시범케이스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와 달리 배드민턴은 국가마다 출전하는 복식팀이 두 팀이라 같은 나라끼리 붙을 수 있었던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고의패배로 여자복식팀 두 팀 모두 실격됐다.
이 회장은 “국제배드민턴협회가 규칙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발생한 문제인데 선수를 가혹하게 비난하거나 실격 처리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의패배 논란 외에도 동메달을 목에 건 이용대·정재성 복식팀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다.
양산시배드민턴연합회 장세경 회장은 “최근 성적이 좋았다. 메달권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4강전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해 더욱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특히 정재성 선수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용대 선수는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데다 올림픽 출전 기회도 한두 번 남았지만 82년생 정재성 선수에게 런던올림픽은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장재성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결실을 맺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경기를 끝내고 마지막에 눈물 흘릴 때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회장 역시 “이용대·정재성 선수가 올해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덴마크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만큼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높아서 압박 같은 게 있어서 힘들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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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은(35)과 주세혁(34), 유승민(30) 선수가 팀을 이룬 이른바 ‘노장’의 투혼으로 탁구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동메달에서 은메달로 메달 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값진 성과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세대교체 숙제가 산적해 있다.
공수만탁구교실에서 만난 T.T.M탁구동호회 회원들의 목소리도 세대교체에 집중됐다.
회원 원광한 씨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물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중국과 기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그 배경에는 세대교체가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고 말했다.
공수만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공수만 씨 역시 세대교체에 아쉬움을 표했다.
공 씨는 “중국은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런던올림픽이 출전해 그 기량을 마음껏 선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팀은 세대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쉬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특히 공 씨는 “실력으로 봤을 때 충분히 경기를 해볼 만한 신예선수들이 있음에도 기존 대표선수들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 신예선수들이 경기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같은 한국탁구계의 숙제와 별도로 생활탁구는 올림픽 분위기를 타고 인기를 누린다.
공 씨는 “탁구장을 운영하면서 탁구에 대한 향수가 있어 찾아오는 중년층이 많다. 특히 최근에는 올림픽으로 인해 탁구가 연일 언론에 노출되다보니 호기심에 경기를 해보러 오는 젊은층도 종종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노미란 기자 yes_miran@y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