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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호 남강 역리연구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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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생일은 팔월 이십삼일, 코스모스의 애잔한 대궁에 초추의 양광이 하릴 없이 떨어지는 가을의 초입이며 신 새벽 품안에 파고드는 서늘함에 잠을 깨면 문득 귀뚜라미의 명징스런 소리가 가슴 먹먹한 추억으로 이어지는 절기이다.
여름의 이글거리던 화기는 점차 약해지며 물빛은 차분해지고 절 집의 종소리가 맑아지니 금이 제 빛과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오행 상으로 신금이다. 신금은 예리한 장검처럼 긴장되고 서늘한 기운이다.
하지만 8월 말의 한낮, 여름의 아쉬움은 시방도 사라지지 않은 채 화살촉 같은 따가운 햇살로 남아있다. 그래서 금이 마음껏 발호를 하려고 해도 아직은 태양의 여력이 있어(화극금) 엄격한 절제를 받는 칼 집 속의 장검과 같다.
양산시민신문은 이렇게 절기상 검의 기운을 강하게 받고 태어났다. 부정과 부패를 획책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예리한 검광으로 심장을 파고드는 비수,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는 병상을 지켜주는 휴머니티로 무장된 활인의 메스이어야 하는 상반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항시 칼 집속에 들어 있지만 유사시 일전을 불사하는 용기와 절제의 보검, 출중한 신언서판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지역의 화합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신문의 사주상 특징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신사라고 한다. 하여 양산시민신문의 명조는 바로 ‘신사의 품격’이다.
하지만 ‘체면이 밥 먹여주지 않는 각박한 세상‘에 이 신문이 양산의 빛나는 메아리가 되어 언론의 정도를 걸으며 신사로서의 삶과 체면을 유지하며 어언 9주년이라는 성상을 맞이한 것은 실로 뜻 깊고 축하할 일이다.
신사는 체면으로 산다.
그러나 얄팍한 시대심리랄까. 최근 훈남, 까도남 하는 신조어들이 등장하면서 신사라는 단어는 어느새 쓰이지 않는 사어가 되고 있다. 한 술 더 떠 정치권을 둘러싼 최근의 에피소드는 이제 ‘신사답다’ 라는 말의 어원조차 무색하게 하고 있다.
안철수 씨의 룸살롱 출입 진위여부를 두고 정치집단과 대선후보군들 사이에 한동안 얼굴 붉히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직장인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사업가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술집을 이용하는 것이 좋든 싫든 이 땅의 음주 문화다. 뿐이랴 이차 삼차는 기본이고 폭탄주 술 문화와 한 집 건너 노래방, 두 집 건너 단란주점이 작금의 음주환경 실상이다.
여성 종사자와 함께하는 술 문화를 옹호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허나 백번 양보해 ‘단란히 마시는 집(?)’에 어쩌다 몇 번 들렀다고 하자. 현실론적으로 볼 때 일부러 변명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변명하면 더욱 이상한 모습이다. 이를 두고 도덕군자의 실상이 어쩌고저쩌고하며 정당과 언론들이 깨춤을 추었다.
시쳇말로 보기가 징글징글하다. 딱 깨서 신사답지 못하다. 하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이겨 살아남는 적자생존만이 지고지선의 우리네 선거풍토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명색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입추가 지난 지 이미 오래이건만 정치판은 아직도 냄비처럼 뜨거워 식을 줄을 모른다. 시장에서 상인들과 웃고 있는 대선후보들의 사진을 신문지상에서 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치뤄지는 포장과 형식뿐인 연말 불우이웃돕기 모금 사진이 오버랩 된다.
사진속의 상인은 웃음의 크기만큼 진정 그 후보가 서민생활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을까. 무사가 자존심으로 승부하듯이 신사는 얄팍한 포장이 아닌 진정한 체면으로 승부한다.
양산시민신문 또한 앞으로도 자신의 운명대로 신사의 체면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물론 신사이니 복채는 양심껏.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