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발달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들은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판매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1차 홍보 수단으로 ‘간판’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업체간 경쟁 과열로 거리의 간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크기 또한 대형화 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산시가 간판정비 사업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은 도시 미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양산시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섣부른 사업 시행은 또다른 예산낭비의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간판정비, 죽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라
2.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3. 간판정비 성공과 설패의 원인
4. 사업주도 방식에 따른 성공과 실패
5. 양산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라
![]() |
↑↑ 지나친 경쟁으로 무분별하게 난립한 건물 간판들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는 사례. 사진은 경기도 수원역 앞. |
ⓒ |
‘기관,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標識)’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간판’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업종을 알리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진 않는다. 간판은 가게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때론 그 성격까지 노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간판정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급속도로 발전한 산업의 속도 이상으로 넘쳐나는 간판들에 대한 ‘제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질적 변화와 궤도를 같이한다.
우리 사회는 ‘먹고 살기’를 위해 질주하던 60~70년대와 민주화의 열망이 들불처럼 번지던 80~90년대를 넘어 이제 삶의 질을 논의하는 시대로 성장했다.
생산과 수입만큼 소비생활 자체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 자체가 ‘양’에서 ‘질’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행태 변화는 공간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회색 콘크리트의 빌딩들이 색동옷을 입기 시작했고, 직사각형 얼굴이 개성을 갖기 시작했다. 건물의 ‘환골탈태’는 도시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확대됐다.
간판정비의 역사는 이때부터다. 도시 전체에 ‘디자인’이란 미학(美學)이 요구되자 가장 먼저 정비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길’이다. 기존 콘크리트 건물을 한순간 아름답게 바꿀 수 없는 상태에서 간판 정비는 저비용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시디자인의 하나라는 판단 때문이다.
![]() |
↑↑ 서울 인사동 일대에서는 상점의 개성을 살린 간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 |
국토연구원 신정철 박사는 2002년 ‘도시미관증진을 위한 가로간판 정비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간판에 대해 “해당 점포나 업소의 장소표시를 시각적 흡인효과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며 “시각적 장소성의 강조가 지나친 나머지 경쟁적으로 가로간판의 홍수를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신 박사는 보고서를 통해 거리간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건물 벽체와의 부조화 ▶건물의 손상 ▶과다 수량 및 획일성 ▶간판간의 부조화 등을 꼽았다.
결국 간판정비는 양적 축소와 더불어 디자인의 변화, 그리고 지역별 특색을 살릴 수 있는 형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 박사는 양적 축소의 경우 건물별, 점포별 수량에 대한 축소방안과 건축물 고유의 의도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물의 입면대비 간판광고물의 면적을 제한하는 총량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별 도시 특성이 다른 만큼 간판의 적용규제 차별화 역시 중요하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그리고 농어촌 지역에서의 간판 양상이 각각 다른 만큼 일반상업지역과 기타 지역과는 간판 설치기준에 차등적 구분이 필요하다.
![]() |
↑↑ 간판정비사업 시행 후 10년이 지난 청계천은 지나친 획일화로 개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 |
양산시는 현재 삼일로 구간(옛 시외버스터미널 ~ 경남은행 사거리)을 간판정비사업 시범구간으로 정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곳은 한때 양산지역의 중심상권으로 화려한 시절을 지나왔다.
시는 간판정비사업을 바탕으로 구도심의 부활을 꿈꾼다. 본 사업을 통해 단순히 간판만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거리 전체의 미관을 개선하고, 나아가 소비ㆍ문화의 거리로 키운다는 목표다.
간판정비는 시발점이다. 따라서 시는 간판정비사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분석, 그리고 타 지자체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애초 목표를 달성하는 현명함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