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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간판의 역사, 언제부터일까?..
경제

간판의 역사, 언제부터일까?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09/11 14:37 수정 2012.09.11 03:21
고대 이집트ㆍ그리스ㆍ로마시절부터 사용





간판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간판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광고 효과’를 생각한다면 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부터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역사가 깊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간판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상품 안내를 위해 벽에 하얀 도료를 칠하고 게시판을 만든 것.

당시 문맹(文盲)이 많았던 관계로 글자보다는 상품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적인 도안’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담쟁이 가지’ 간판이다. 포도주를 판매하는 곳이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내건 이 간판은 “술이 훌륭하면 담쟁이 가지가 필요 없다”는 말로 세익스피어의 소설에도 등장할 만큼 널리 사용됐다.

현재 이발소의 상징으로 쓰이는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이발사가 의사 노릇을 병행하던 시절 피를 의미하는 빨간색과 붕대를 의미하는 흰색의 조합이 지금까지 이발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간판은 고대부터 사람들에게 특정 업종을 알리고 영업 내용을 인식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간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390년대 영국 상인들에 의해서다. 영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점을 알리기 위해 고유한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 간판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16세기부터 파리와 런던에서는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인숙 간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간판에 대해 건물 정면에 붙여 달도록 했다. 이전의 ‘돌출형’ 간판은 바람에 흔들려 지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발명으로 ‘네온사인’ 등장

인쇄술과 전기가 발명되면서 간판 문화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세기 말 간판에는 전기를 이용해 야간에는 조명을 밝히게 됐고, ‘네온간판’ 역시 이때 등장한다. 지금이야 야간 거리의 흉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광고 효과라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이 속도를 더하면서 간판의 모양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 ‘네온사인’이 등장한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리를 구부려 글자 모양의 간판을 만들기 시작했고, 발광 기체를 넣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게 만들었다.

16세기와 마찬가지로 넘쳐나는 네온간판에 정부의 규제 역시 심해졌다. 유럽의 경우 20세기 중반 조명장치를 단 간판뿐 아니라 모든 간판이 사실상 주거지역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이처럼 간판의 역사는 항상 ‘규제’를 동반해 왔다. 가게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광고를, 시민들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때론 거리를 어지럽히는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 ‘홍보’를 위한 상인들의 노력과 거리의 미관을 고려한 통제가 엇갈린다.

다만 지금은 이러한 홍보와 통제의 반복을 넘어 조율점을 찾는 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홍보를 뛰어넘어 거리의 미관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상생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이상 간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거리의 흉물이 아닌 도시의 아름다움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간판의 역사는 다시 한 번 진화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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