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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창간기획-도시디자인의 시발점 간판정비 2
‘개성’을 가둬버린 청계천의 통일성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09/18 13:31 수정 2012.09.18 01:31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도시가 발달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들은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판매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1차 홍보 수단으로 ‘간판’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업체간 경쟁 과열로 거리의 간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크기 또한 대형화 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산시가 간판정비 사업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은 도시 미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양산시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섣부른 사업 시행은 또다른 예산낭비의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간판정비, 죽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라
2.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3. 간판정비 성공과 설패의 원인
4. 사업주도 방식에 따른 성공과 실패
5. 양산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라

↑↑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은 지나친 통일감으로 가게의 개성을 상실하고 간판을 통한 변별력을 얻을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청계천 일대 공구상가 모습.
청계천 간판정비사업 8년 주인마저 관심 밖

청계천 일대가 도시정비의 이름으로 간판 교체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2002년 사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2004년 본격 진행된 해당 사업은 많은 지자체들에 ‘모범사례’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 후 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성공과 실패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사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무게추가 기울어 있다.

우선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은 ‘시초’로서의 역할이다. 그동안 담론 수준에 머물렀던 간판정비를 구체적으로 실현해냈다는 것이다.

송주철 공공디자인연구소장은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의 경우 그동안 사회적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던 간판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시작된 사례”라며 “이러한 사례가 전국 간판개선사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청계천 간판정비는 도시미관 정비라는 큰 틀의 실천이라는 의미를 제외하곤 대부분 항목에서 ‘실패’로 평가받는다.

우선 ‘정비’에 중점을 둔 나머지 간판 고유의 특색이 사라졌고 지나친 통일감만 적용해 오히려 거리를 획일화했다는 평가다.

실제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은 청계천 복원 당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전시행정’이란 비판이 제기돼 왔다. 청계천 복원 당시 주변 상인들의 높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 놓은 회유책이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대로 된 연구나 기획 없이 추진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간판정비사업 시행 10년이 지난 현재 청계천 주변은 여전히 수많은 간판들이 난립해 도시미관 개선이라는 정비사업 목적을 퇴색시키고 있다.
지나친 통일감이 개성 상실케 해

지난 2007년 국회에서는 ‘간판문화를 통한 공간 재창조’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청계천 간판정비를 놓고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청계천 간판정비가 간판개선사업의 도화선이라며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던 송주철 소장마저 구체적 항목에 대해 ‘실패’로 규정했다.

송 소장은 당시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청계천 간판정비에 대해 점포주 92%가 불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문조사 내용에 따르면 점포주들은 ‘간판디자인이 너무 획일적이다’(38%), ‘내 간판이라는 소유감이 없다’(36%), ‘간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18%) 등의 이유로 간판정비 사업을 실패로 규정했다.

결국 간판에 대한 통일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개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실제 청계천 일대 공구상가는 ‘사실상 똑같은 모양’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획일화 돼 있다.

현재 청계천 일대에서 공구상가를 운영 중인 남일영(52) 씨는 “상점 이름만 다를 뿐 저 상점 간판이랑 우리 간판이랑 다를 게 뭐 있냐”며 “간판이라면 그래도 자기 가게의 특색도 좀 살리고,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어야 애착이 가는 건데…”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간판업체 관계자 역시 “(청계천의 경우) 간판디자인의 획일화가 발생했고, 간판의 1차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랜드 마크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건물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간판정비 사업의 궁극적 목적이 거리를 아름답게 하고, 도시 전체 미관을 살리는 데 있는데 청계천 간판정비는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노후한 건물에 대한 개선 작업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청계천 일대 점포들은 낡은 오래된 건물에 오직 간판만이 ‘새 것’인 형국이다. 특히 당시 청계천 복원을 통해 주변 일대를 관광지로 육성시킨다는 큰 틀의 정책을 추진한 만큼 주변 건물들의 미적요소에도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일부 상가의 경우 업종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건물과의 조화는 물론 주변 설치물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그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건물과의 조화 없고 사후관리도 안 돼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낡은 건물에 대한 정비까지 시행하기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청계천이 간판정비 사업의 시초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도 지적된다. 8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간판들은 부식되거나 빛이 바래 미관을 오히려 해치는 경우도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기섭(48) 씨는 “특별히 가게를 알릴만한 간판도 아니고, 무엇보다 간판에 대한 애착이 없다보니 주인들이 간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그나마 우리는 식당이라 간판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결국 앞서 언급한 지나친 통일감이 간판에 대한 점포주들의 애착을 잃게 하고, 간판정비 사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 청계천에서 이면도로로 접어들면 가판정비사업이 시행되지 못한 곳이 나오면서 부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청계천 간판정비는 선도적 역할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전문가들 사이 ‘실패’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남은 문제는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을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주철 소장은 “청계천 간판정비는 결국 관 주도의 하향식 행정정책이 양산한 하나의 오류”라며 “특히 지자체들이 간판정비 사례를 수용하는 데 있어 청계천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사전 검토와 비판의식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 전개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송 소장은 덧붙여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단편적 시각으로 간판정비를 시행하고 있다”며 “관 주도가 아닌, 점포주들 스스로 간판에 대한 공공책임의식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적한다. 간판정비 사업에 있어 청계천은 하나의 사례로 작용해야지 결코 ‘모방’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삼일로 간판정비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양산시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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