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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창간기획-도시디자인의 시발점 간판정비 3
간판정비, ‘모방’ 아닌 ‘응용’을 하라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09/26 09:37 수정 2012.10.19 02:49
간판정비 성공과 실패의 원인






도시가 발달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들은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판매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1차 홍보 수단으로 ‘간판’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업체간 경쟁 과열로 거리의 간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크기 또한 대형화 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산시가 간판정비 사업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은 도시 미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양산시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섣부른 사업 시행은 또다른 예산낭비의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간판정비, 죽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라
2.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3. 간판정비 성공과 실패의 원인
4. 사업주도 방식에 따른 성공과 실패
5. 양산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라

↑↑ 수원 화성 공방거리의 경우 거리의 성격과 점포의 특성에 맞춘 개성 있는 간판들로 호평을 받고 있다.
‘취사선택’의 묘미를 살려야

간판정비는 ‘간판’만을 정비하는 사업이 아니다. 거리 전체의 미관을 아름답게 꾸밈과 동시에 각 점포만의 차별성과 해당 지역의 ‘지역색’까지 담아내야 한다.

통일성과 개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여기에 ‘미학’을 덧붙여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간판정비 사업이 결코 일방적으로 추진돼서도 안 되며, 짧은 시간 단편적인 논의만으로 진행돼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수사례라고 평가받는 지역의 간판정비 사업을 ‘모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수지역의 간판 크기와 모양, 재질 등을 참고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그대로 복제하는 수준이다.

송주철 공공디자인연구소장은 “간판정비사업은 지역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사업의 진행방식이나 결과물이 전반적으로 청계천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에 결과물도 청계천의 경우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청계천 간판정비 사업의 문제점을 지역에서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지 446호, 2012년 9월 18일자>

통일감과 개성의 적절한 조화

결국 지자체에서 간판정비 사업에 접근할 때는 모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에 대한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기도 안성시의 경우 각 점포마다 각기 다른 디자인을 적용해 점포의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다. 하지만 안성시 역시 건물 규모와 간판 크기의 비례가 맞지 않고, 간판 크기의 동일성을 주는 기준 역시 계획적으로 적용되지 않아 전반적으로 산만한 거리경관을 형성시켰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고양시 역시 간판정비 과정에서 일부 건물이 업종에 따라 간판 색깔과 글자형태를 구분 적용했다. 예를 들면 병원 간판의 경우 상호명은 녹색, 진료과목은 빨강으로 통일한 반면, 음식점의 경우 흰색 글씨에 노란색 배경을 넣도록 하는 방식이다.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간판정비 과정에서 획일성이 발생하는 문제는 극복했다는 평가다.

↑↑ 전통물품을 파는 점포가 많은 서울 인사동의 경우 낡은 간판 자체가 점포의 특성을 잘 살려준다는 평가다.
전통의 인사동, 세련됨의 광복동


개성을 살린 부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은 서울의 인사동이다. 사실 인사동 간판의 경우 거리의 특성이 자연스레 배어들면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사동은 간판의 디자인과 색상이 점포마다 모두 다르다. 전통찻집의 경우 투박함이 강한 반면,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의 경우 세련됨이 강하다. 전통 물품을 파는 점포의 낡은 간판은 ‘낡음’ 자체가 점포의 특성을 잘 살려준다. 오히려 전통 물품을 파는 가게에 새 간판을 달았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 광복동의 경우 거리의 느낌 자체가 인사동과 다르다. 인사동이 전통과 문화를 파는 곳이라면 광복동은 철저히 현대적 상품을 파는 곳이다.

광복동 간판들은 건물과의 조화 및 디자인의 창의성 등 많은 부분에서 우수한 형태로 손꼽힌다. 건물 자체가 현대적 감각을 담은 개성 있는 형태고, 간판 역시 이를 충분히 반영하는 모습으로 설계됐다. 건물과 간판의 조화가 일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광복동의 경우 점포 대부분이 큰 기업의 ‘체인형’이라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대형 자본의 뒷받침 없는 일반 영세 점포주라면 그런 형태의 간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광복동은 건물 디자인과 간판 디자인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건물과의 조화 보여주는 수원 공방거리

인사동과 광복동처럼 거리 특색을 살리기 위한 시도는 수원 화성 공방거리에도 적용된다. 인사동을 벤치마킹한 공방거리는 간판정비 사업을 통해 공방거리의 특색을 비교적 잘 살리고 있다는 평가다. 수원시는 ‘공방거리’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건물 벽면 일부 디자인도 전통문양으로 바꿨다.

비용 문제로 건물 전체를 정비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간판이 걸리는 부분은 수원 화성의 특색을 살리고 간판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방거리의 기본적인 간판 형태는 점포 대부분이 유사하다. 새로 단장한 건물 벽면(간판이 걸리는 부분)에 아크릴로 보를 만들고 그 위에 활자형 간판을 달았다. 하지만 글자 형태와 색깔, 디자인에서 차별화를 둬 점포들이 나름의 개성을 살렸다.

거리 전체가 이렇게 꾸며지다 보니 기존 판넬형 간판은 거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거리를 찾는 행인은 물론 점포주 스스로도 부조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공방거리는 글자뿐만 아니라 간판 디자인에서도 최소한의 규정만 뒀다. 피아노 학원은 간판 모양 자체가 피아노를 닮았다. 점포의 특색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공방거리의 한 음식점 대표는 “처음에 간판을 새로 정비한다 했을 때 비용이 들어서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간판을 바꾸고 나니 우리 가게 간판만 이상한 것 같아 바꿀 수밖에 없었다”며 간판정비 효과를 설명했다.

↑↑ 부산 광복동 일대는 현대식 건물과 점포, 그리고 간판이 적절한 조화를 찾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돌출간판이 아니라도 충분히 광고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돌출간판 문제와 야간 조명도 고민해야


사실 가로형 간판보다 더 큰 문제는 세로형 돌출간판이다. 돌출간판은 가로간판 보다 거리 행인들의 시선을 끌기 쉽다. 가로간판은 건물 정면에서만 볼 수 있지만 돌출간판은 보행자들의 시선과 마주한다.

그만큼 돌출간판의 홍보 효과가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점포주들은 다른 점포 간판보다 더 크게, 더 돌출되게 세로형 간판을 달고 있는 현실이다.

고양시의 경우 이 같은 돌출간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비책을 내 놓았다. 건물에 돌출간판을 줄이는 대신 아래에서도 고층 간판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간판에 경사를 부여한 것이다. 간판이 아래 방향으로 기울어 있어 건물 위를 바라볼 때 눈에 쉽게 띄는 모양이다.

이외에도 야간 조명의 문제가 남아있다. 빛이 강한 LED 조명 경쟁은 자칫 야간 도심 경관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조명은 간판디자인에 비해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적다. 결과적으로 낮에는 개성을 뽐내던 간판이 야간에는 그러한 개성을 잃고 또 다른 형태의 일률적 간판이 되는 우려를 범할 수 있다.

이처럼 간판정비 사업이 시행된 지역 대부분이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동시에 평가받고 있다. 통일감 사이에서 개성을 살려야 하고, 건물 전체와의 조화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양시 등 일부 지역은 간판설치에 대한 규정 때문에 일부 상인들과 여전히 마찰을 빚고 있다.

결국 전문가들이 일제히 주장하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함께’다. 점포주를 포함한 민간 전문가와 사업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충분히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사업을 먼저 시작한 지자체의 결과물을 모방이 아닌 응용을 통해 장점만 취사선택하는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이 취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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