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발달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들은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판매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1차 홍보 수단으로 ‘간판’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업체 간 경쟁 과열로 거리의 간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크기 또한 대형화 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산시가 간판정비 사업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은 도시 미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양산시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섣부른 사업 시행은 또다른 예산낭비의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간판정비, 죽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라
②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③ 간판정비 성공과 실패의 원인
④ 사업주도 방식에 따른 성공과 실패
⑤ 양산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라
개성 잃은 관주도 간판정비↑↑ 경남 창원 상남시장의 경우 관 주도로 실시한 간판정비사업으로 간판의 모양과 색상 등이 지나치게 획일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청계천 간판 정비 사례는 한마디로 최악이다. 관 주도의 일방적인 정비 형태가 주민의 이해와 지원을 얻지 못해 획일적인 결과물로 나타났다. 간판이 갖는 정보 가치와 경관 가치를 모두 무시한 사례다. 정비 사업을 주도한 서울시의 간판에 대한 이해 부족도 이런 결과를 낳는데 한몫했지만 간판에 대한 점포주의 주인의식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 최범 소장은 청계천 간판정비를 최악의 사례라 지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관 주도에 의한 획일성 때문이다. 최 소장뿐만 아니라 거리디자인 또는 간판디자인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게 바로 관 주도에 의한 간판의 획일성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2007년 간판정비 사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국 관계자는 “하나의 상업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간판의 정리정돈에서 경계할 일은 ‘획일성’”이라고 지적하고 “(간판정비 사업은) 도시, 거리, 골목의 지역적 맥락을 찾아내고 이를 담아내는 미학적 시도인 만큼 규제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관 주도 방식이 최선이 아님을 역설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간판정비 사업에 일정 부분 강제성이 필요하다며 “하나의 큰 간판이 들어서면 그 주변이 그와 같거나 그보다 더한 수준으로 맞춰지는 ‘공격과 방어의 악순환’으로 점철된 만큼 제어를 위한 좋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내가 봐도 우리 집 간판 찾기 힘들어요”↑↑ 통술거리는 지난해 간판정비를 실시했으나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다시 간판들이 난립하고 있다. ⓒ
관 주도 방식의 청계천 간판정비는 이후 타 지자체의 ‘모델’이 되면서 확산해 나갔다. 경남 창원도 마찬가지다.
창원시는 지난 2007년 7월 토월로 일대를 ‘간판과 경관이 아름다운 디자인 시범거리’로 정하고 간판정비 사업을 시행했다. 박완수 창원시장은 당시 ‘간판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16개 건물 520여개 간판에 대한 일제 정비를 지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창원시는 지난해에도 예산 11억원을 들여, 상남시장 244개 점포의 간판 450여개의 숫자와 크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교체를 단행했다.
하지만 점포의 특성을 살리겠다는 창원시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동일한 색상과 글씨체에 재질까지 현재 상남시장 간판은 점포의 개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생선가게 한 점포주는 “시에서 시범적으로 간판을 정비한다니 점포주들이 대부분 불만 없이 동참하고, 사실 기대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이런 식으로 똑같은 모양으로 간판을 만들고 나니 사실 우리 가게 간판을 찾기도 어려운 형국”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점포주들은 간판이 홍보 효과를 잃어 매출이 감소했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식품가게를 운영하는 한 점포주는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모양의 글씨에 크기까지 똑같으니 우리 집 간판이 쉽게 드러날 리 없지 않냐”며 “간판을 바꾸고 나서 매출이 오히려 크게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점포주 ‘참여’ 아닌 ‘주도’ 해야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유석 창원대 건축학부 교수는 “간판이 너무 통일화돼서 획일화되는 것이 문제”라며 “유형에 따라 간판 크기, 색채 등 몇 가지로 분류해서 업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시 위주로만 결정해 버린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상남시장은 이러한 지적과 더불어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상남시장의 경우 건물 외벽 간판은 새로 정비를 했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낡고 복잡한 예전 간판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외부의 깔끔한 느낌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깨지는 것이다. 상인들은 이것 역시 간판정비의 역효과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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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복잡한 느낌을 갖게 하는 상남시장의 내부 간판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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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추가 정비는 점포주들이 그 몫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간판정비에 대한 점포주들의 능동적 참여가 없는 이상 과거 간판난립 시절로 회귀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 창원 통술거리의 경우 지난해 시 주도로 간판정비를 마쳤으나 추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간판이 다시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간판정비 사업에서 지자체의 역할은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불응하거나 비협조적인 점포주에 대해 설득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간판정비사업 전체를 진두지휘할 경우 간판은 특색을 잃게 되고, 무엇보다 점포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간판디자인의 구체적 모양, 색상, 재질 등은 민간전문가와 점포주들이 많은 논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체 사업 기간 역시 장기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이 취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