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발달하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인들은 ‘홍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판매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1차 홍보 수단으로 ‘간판’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업체 간 경쟁 과열로 거리의 간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크기 또한 대형화 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산시가 간판정비 사업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은 도시 미관 개선과 상권 활성화. 양산시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칫 섣부른 사업 시행은 또다른 예산낭비의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간판정비, 죽은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라
② 청계천 간판정비 그 후 10년의 변화
③ 간판정비 성공과 실패의 원인
④ 사업주도 방식에 따른 성공과 실패
⑤ 양산시,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라ⓒ
양산시가 구도심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삼일로(구 터미널 ~ 경남은행 사거리 구간) 간판개선 시범사업이 다음 달 마무리 될 예정이다. 시는 “점포주 가운데 90% 이상 동의를 마친 상태”라며 차질 없는 사업 진행을 예상하고 있다. 시는 ‘삼일로 간판개선 시범사업 추진협의회(이하 간판협의회)’를 구성하고 간판 정비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했다. ↑↑ 양산시는 오는 11월 사업완료를 목표로 삼일로 일대에 간판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시가 간판정비와 더불어 진행한 전선지중화사업 전(아래)과 사업 후(위)의 달라진 거리 모습. ⓒ
시에 따르면 현재 점포주 90% 이상 동의를 얻었으며 나머지 10%에 대한 동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시 건축과 도시디자인 담당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간판정비 사업이 시작한지 오래되다 보니 점포주들도 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덕분에 주민동의는 쉽게 얻고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간판정비에 동의하지 않은 점포 대부분은 체인형 점포라고 한다. 본사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간판 규정 때문에 점포주 개인 뜻대로 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시는 본사측에 동의를 구하고, 간판 정비 기준 안에서 가능한 본사가 요구하는 형태로 제작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점포주, ‘지나친 통일성’ 우려
“우리 의견 반영 잘 안 돼”
시 설명대로라면 삼일로 간판개선 사업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추진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먼저 간판 디자인에 대한 점포주의 불신이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점포주는 간판디자인의 획일성을 우려했다.
그는 “시에서 보여준 디자인이 사실 다 비슷비슷하고 다른 가게 주인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정비를 하면 (거리가) 깔끔해지긴 하겠지만 너무 똑같이 생긴 간판만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간판정비 사업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나친 통일성’을 지적한 것이다.
또 다른 점포주는 디자인에 점포주 의견 반영이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점포주는 “바뀌게 될 간판모습이라며 몇 가지를 보여줬는데 깔끔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며 “하지만 사실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그저 그쪽(디자인업체)에서 제시한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일부 점포는 글씨 크기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연계사업 통해 미관 개선 극대화
“개성 보다 간판 수 줄이는 데 목적”
이처럼 일부 점포주들이 ‘지나친 통일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자 시 관계자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삼일로 간판정비에 대해 독특함을 살리자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삼일로 구간에만 간판이 657개나 있다. 지금은 시범사업인 만큼 디자인의 독특함 보다는 간판의 크기를 줄이고 숫자를 줄이는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간판에 대한 인식 전환 차원의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간판정비 사업의 효과만 (점포주들이) 인식하게 되더라도 성공적 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업 완료) 이후에 현재 요구하는 독창성 등을 서서히 고민해 나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첫 정비사업인만큼 무리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특히 시는 간판정비와 더불어 추진된 전선지중화 사업이 거리 미관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시는 ‘시범사업’을 이유로 간판정비에 있어 일정 수준 문제점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간판은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 십 년 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재기된다.
앞서 언급한 주민 의견 반영 의지가 적다는 지적도 문제다. 실제 주민대표를 포함한 간판협의회 회의는 사업 완료 한 달을 앞둔 현재 2차례에 그쳤다. 전선지중화 사업을 병행하며 거리미관 개선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와 달리 돌출간판을 여전히 허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 시는 기존 간판 가운데 이미 잘 정비된 간판의 경우 점포주와 상의해 현재 간판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시가 선정한 좋은 간판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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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정비사업 취재후기] ‘시범사업’이 핑계가 돼서야…
양산시가 구도심 활성화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삼일로 간판정비 사업. 사실 삼일로 일대는 구(舊) 도심이라는 말에서 보듯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간판 역시 지나친 경쟁으로 난립한 형국이다. 시가 어떤 목적이든 간판을 정비하겠다고 나선 것이 반가운 일이다. 시 의도대로 간판정비 사업이 상권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역시 반가운 일이고.
간판정비 사업은 이미 10여년의 과도기를 거쳤다. 과도기를 거치며 간판정비 사업은 몇몇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지적된 문제점 고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양산시의 간판정비 사업은 이미 노출된 문제점을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관주도에 의한 일방적 정비가 ‘지나친 통일성’이라는 문제를 걱정하게 만든다. 물론 아직 사업이 완료되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계 공무원의 발언과 점포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상황이다.
또, 시는 점포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사업이라 설명하지만 점포주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일부 점포주들이 디자인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 ‘공짜’ 사업이기 때문에 굳이 문제를 키우지 않을 뿐.
실제 간판협의회는 사업 시행 이후 지금까지 단 두 차례 회의를 여는 것에 그쳤다. 첫 회의가 협의회를 구성하는 내용이었으니 사실상 ‘회의’는 단 한 차례에 그친 것이다. 제작된 간판을 설치하기 직전에 추가 협의회를 가진다고는 하지만 그때 점포주들의 의견을 다시 반영한다는 것은 무리다.
시범사업인 만큼 많은 욕심을 낼 수 없다는 시 공무원의 말도 일리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시작하는 첫 도전인 만큼 무리한 욕심이 도리어 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범사업을 이유로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점을 덮어버리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시는 삼일로뿐만 아니라 통도사, 북정동 일대와 웅상지역에 대한 간판정비도 계획 중이다. 시 설명대로 삼일로의 경우 ‘시범사업’이기에 여러 문제들이 묵인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 진행될 이들 지역에서도 ‘지나친 통일성’, ‘개성을 잃은 간판’, ‘점포주 의견 반영되지 않은 사업’ 등의 문제가 지적될 경우 더 이상 ‘핑계’가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 취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