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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염려로부터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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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로부터 자유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10/23 10:29 수정 2012.10.23 10:29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옛날 기(杞)나라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땅이 꺼지지 않을까 하는 근심으로 음식을 먹을 수도, 잠도 잘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일을 걱정하는 친구가 있어서 둘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하늘은 기체가 쌓인 것이니 무너질 염려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기인(杞人)은 “하늘이 기체라면 해나 별은 떨어질 것이 아닌가?”라고 염려했다. 그가 “해나 별은 기체 속에서 빛을 내는데 지나지 않는 것일세. 그러니까 떨어진다 하더라도 맞아서 죽을 염려는 없네”라고 하자 “땅이 꺼지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염려했다.

그는 “땅은 흙덩어리가 쌓인 것이니 꺼질 염려는 없다”고 안심시켰으나 기인은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할 것인가?’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일로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을 기인(杞人)의 우(憂), 기우(杞憂)라 한다.

우리말 큰사전에서 염려는 ‘앞일을 이리저리 헤아려 걱정함. 또는 그런 걱정’이다. 염려는 미래에 대해 계획하는 것과는 다르다. 염려는 어떤 일을 생각하며 신경을 쓰고 안달하며 속을 썩이는 걱정을 뜻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하여 생각하며 걱정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 염려이다.

염려는 치사율이 높은 악성 바이러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염려로 인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생활에 활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숨진 미국 젊은이를 30만명으로 보고 있는데, 남편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뒤 염려하다 심장마비나 다른 질병에 걸려 죽은 시민이 1백만명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염려’라 말했다. 인간과 염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니 젤린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결국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이렇듯 염려하는 일들 가운데 기우가 얼마나 많은가? 행복과 건강을 위해 부질없는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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