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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남부분원 이전 1주년
망자(亡者)의 마지막 유언을 밝혀라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10/23 13:23 수정 2012.10.23 01:23
10년 만에 재개된 부검, 과학기술로 사인 규명

독극물·마약 조사, 유전자·혈중알코올 분석도




모든 사망에는 원인이 있다. 다만 그 원인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가 있을 뿐. 부검은 망자(亡者)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 찾아내는 행위다.

이러한 ‘부검’은 꼭 망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 화재 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부검은 필요하다. 다만 생명체가 아닌 현장에 관한 정밀 조사라는 형태가 다를 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흔히 국과수로 불리는 이곳은 ‘무’(無)에서 ‘유’(有)를 찾아내는 곳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유를 찾아내는 곳이다.

현재 양산에는 국과수남부분원(이하 남부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부분원은 지난해 10월 20일 부산 영도에서 양산으로 위치를 옮겼다.

이전 후 첫돌을 맞는 남부분원은 현재 35명의 직원과 2명의 연구원이 근무한다. 법의학, 법화학, 이공학 등 3개 연구 분과와 행정지원을 담당하는 서무과까지 총 4개 과로 구성돼 있다.

법의학과에는 다시 법의학실과 유전자 분석실이 존재한다. 법화학과는 약독물실과 분석화학실이, 이공학과에는 물리분석실과 교통공학실이 있다.

미제사건을 기제사건으로 만드는 이들은 미국 TV 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범죄 현장 수사대)의 인기 등으로 최근 역할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업무를 소개해 본다.

■ 약독물실

최상길 약독물실장은 약독물 조사분야를 “재미있는 분야는 아니다”고 소개했다. 부검업무를 수행하는 법의학실 등과 달리 업무 대부분이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관계로 화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주된 업무는 약독물(의약품+독극물)에 관한 조사와 마약 조사다. 약독물실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사람이 사망한 경우 혈액이나 장기 조직을 채취해 사망 원인에 약독물 성분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을 한다.

마약검사 역시 소변, 혈액, 모발 등을 통해 마약 투여 여부를 검사한다. 모발의 경우 투약 후 길게는 2년까지 성분이 남아있다고 한다. 약독물실 업무는 연예인들의 마약투여 사건 때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편이다.

↑↑ 조사 의뢰를 받고 연구 중인 남부분원 연구원
■ 분석화학실


분석화학실 업무 중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게 ‘혈중알코올농도분석’이다. 실제 조사 의뢰 건수에서도 가장 많다. 다음이 미세증거물 분석이다.

권미아 분석화학실장은 “범인 옷에서 떨어진 미세한 증거들이 현장에 남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러한 증거물에 대한 성분을 조사한다”며 “한 건을 분석하는 데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측에서 증거물을 채취해 보내기도 하지만 가끔은 출장을 통해 직접 현장 증거물을 입수하기도 한다. 권 실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을 꼽았다. 당시 부엉이바위를 직접 올라 조사했는데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상당한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 유전자분석실

일반인에게는 친자확인의 결정적 기준으로 잘 알려진 유전자 검사. 범죄사건에는 현장에 있었던 용의자나 피해자의 신원확인에 주로 사용된다.

남부분원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물 위주로 조사가 진행된다. 유전자는 일치율이 높고 변하지 않는 개인 고유의 특성을 담고 있어 수사에 강력한 증거물로 작용한다.

조사는 경찰 또는 국과수 수사요원들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해 각 분원으로 분석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임시근 유전자분석실장은 “이렇게 의뢰받은 증거물을 분원에서 PCR증폭을 통해 DNA 부분을 10억배가량 증폭한다. 바로 이 증폭 기술의 발달 덕분에 미량의 시료에서도 유전자 감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법의학실

부검. 법의학실 업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다. 병원에서 실시하는 부검과 달리 수사기관의 영장이 발부돼야 하는 ‘사법부검’으로 의뢰 과정이 다를 뿐이다. 현재 남부분원 부검은 분원이 양산으로 이전하며 10여년 만에 부활했다.

김영주 법의학실장은 “부검은 모든 과학 기술을 동원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인을 밝힐 수 있다”며 “부검은 수사 과정에서 최후의 보루인 만큼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철저해야 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부검이란 게 망자의 시신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부검 자체 업무만큼 신중해야 하는 게 시신과 유가족에 대한 배려다. 부검실에 경찰과 유가족, 부검의 이외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것 역시 이러한 배려 때문이다. 덧붙여 유가족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부검의의 역할이다.

↑↑ 법의학실 부검실 모습
■ 물리분석실


물리분석실의 주 업무는 화재조사다. 더불어 전기, 추락, 기구 등 각종 안전사고 역시 물리분석의 기술이 적용된다.

화재로 이미 전소해버린 현장. 이곳에서 어떻게 발화지점을 찾고 화재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사건의 실마리는 발화부를 찾아야 풀린다. 연구원들은 발화부를 찾기 위해 ‘연소형상’을 역추적하고, 불이 번진 모양과 위치 등을 추적해 사건의 발단을 찾는다.

현장에 남은 상황을 바탕으로 사건 시작을 역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화재 현장 훼손이 심할수록 발화부와, 발화 원인을 추적하는 게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

서영일 물리분석실장은 “어린 시절 추리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재미를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우리는 현장의 모든 상황을 바탕으로 추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 교통공학실

살면서 감기만큼 흔한 게 교통사고가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교통사고 관련 조사는 교통공학실에서 진행된다.

사고 원인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사실관계, 바퀴 자국, 파편 등으로 용의 차량을 추정하는 업무까지. 여기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급발진 등 차량 결함 여부에 대한 판독 또한 교통공학실의 몫이다.

전우정 교통공학실장은 “사고 차량에 가해진 충격 방향과 노면 흔적 등을 조합해 충돌 전후 차량의 자세나 동작 구동에 대해 역추적 한다”며 “기계적 측면과 아울러 인적 요소(운전 조작 실수 등)까지 추정해 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추정’은 비과학적 요소지만 추정에 이르기까지는 철저한 과학적 분석에 기인한다.

■ 업무환경과 전공

남부분원은 주5일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연구 특성상 실제 근무시간은 ‘원칙’과 종종 다르다. 조사가 많거나 국가적으로 관심이 집중 된 사건은 주말을 반납하고 밤새 연구하기도 한다. 장비나 시설적 측면은 이전 후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다. 다만 남부분원이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일부 지역까지 담당하다 보니 일손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라고.

넓은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다 보니 연구원들의 전공은 다양하다. 이공계열 전공자들이라면 각자 전공에 맞춰 지원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요즘은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분야가 있어 심리학 전공 등 문과 출신도 지원 가능하다. 대신 워낙 전문적 영역이다 보니 대부분 석ㆍ박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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