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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2년 지켜온 향토서점 세종서관 신도시 입성
신도시 유흥가 한복판에서의 문화실험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11/13 13:42 수정 2012.11.13 01:43
중소서점 불황 속 향토지킴이로 자리

북부동시대 22년 마감하고 신도시에 보금자리





구도심의 터줏대감

세종서관(대표 장병천)은 1990년 북부동 경남은행 사거리 근처에 처음 책방을 열었다. 25평 규모로 자그마했지만 유일한 서점이라 인기가 있었다. 점포 안에는 하루종일 책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세종서관은 6년 뒤 현재의 북부동점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230㎡(약 70평)가 넘는 1, 2층을 모두 책으로 채웠다.
 
그리고 다시 16년 만에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것도 신도시 중심상가 한복판이다. 전국적으로 지역 향토서점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고 있는 현실 속에 양산의 노른자위 땅으로 손꼽히는 중부동 신도시 번화가 한복판에 문을 연 것이다. 앞선 북부동점보다 1.3배가량 넓은 314㎡(약 95평) 규모다. 서적 판매 공간 외에도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는 100㎡(약 30평) 가량의 공간도 확보했다.

신도시점을 열게 됨에 따라 북부동점은 내년도 신학기까지만 운영할 계획이다.

이전 결정하기까지 고민

2000년대 들어 양산은 급속도로 변모하였다. 부진하던 신도시 조성사업이 부산대학교 의대캠퍼스와 각급 병원 입주 결정으로 물살을 탔다. 이에 따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연장사업도 당시 신도시 조성사업 주관사이던 토지공사가 공사비 전액을 부담하면서 건설에 들어갔다.

당장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중심상업지구의 개발과 분양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형할인마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고 대형병원과 복합상가 건물이 우후죽순격으로 건설되었다. 구도심에 있던 버스터미널도 이전했다.

지금은 물금읍 범어리 일대에 제2의 상가지역이 호황을 이루고 있지만 중부동 터미널 주변의 중심상가는 밤이 없을 정도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곳은 거의 모든 건물과 점포가 외식업이거나 주점 등 유흥산업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에 장병천 대표는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그 2층에 서점을 차렸다. 개업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도 정리에 분주하던 지난 11월 5일은 세종서관을 개업한 지 정확히 만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장 대표는 이제 서점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하고 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인 만큼 고향에 무언가 기여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다.

유흥문화 분위기 바뀔까

장 대표는 신도시에 정통서점이 들어선다면 유흥문화 위주의 신도시 분위기가 어떤 방향으로든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신도시는 술집이나 노래방 등이 많다. 그 한가운데 서점이 들어온다는 것은 전체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흥가에도 서점이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장 대표 역시 경영악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즈음에서 장 대표는 서울 명동의 한 서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명동에서 45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한 서점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마지막까지 남은 서점이 사라져간다는 것이 아쉬워 출판사와 지역 서점, 시민단체 등이 지원에 나섰는데, 1년 만에 다시 폐업하고 말았다. 비슷한 심정이긴 하다”

하지만 22년 간 서점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장 대표에게 여전히 서점은 놓을 수 없는 대상이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우선 크게, 엄청나게 손해가 없으면 끌어가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다”

‘문화를 나누는’ 서점으로

중소 지역서점의 흥망성쇠를 몸소 겪으면서 한때는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먹었지만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붙들어놓은 듯했다. 자신이 나서 자란 고향인 이곳에서 자신을 키워준 지역사회에 환원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려운 이웃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도 선행이지만 서점주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문화사업은 힘들다고 만류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 당장 내년부터라도 지역 문화계와 함께 의논해서 준비를 해나갈 생각이다”고 말하는 장 대표의 표정에는 이제 출발선을 지난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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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서점의 자존심으로 계속할 터”


<인터뷰> 세종서관 장병천 대표

향토 서점을 22년간 운영해 온 장병천(56) 대표는 대대로 양산에서 살아온 양산토박이다. 그는 서점 운영 외에는 어떠한 취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등산을 빼 놓고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등산코스를 이미 섭렵한 장 대표는 최근 낙동정맥 종주를 마치고 다시 팀을 재편해 호남정맥 종주를 시작했다. ‘양산산바라기’라는 산악모임을 통해 격주로 호남정맥 종주에 나선 장 대표의 산에 대한 철학도 우직한 그의 성품을 닮았다.

“22년 전 당시에는 내가 뭘 몰랐지. 자본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사전조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몰랐다”

호황을 누리던 서점이 대형서점과 인터넷 책 판매의 여파로 2000년대 들어와 하향곡선을 그리자, 장 대표 역시 전업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하지만 장 대표는 꿋꿋이 서점을 이끌어 왔다.

“전업을 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은가. 어차피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내가 이걸 해가지고, 한 몇 년이라도 끌어봐야겠다는 자존심, 이런 게 있었다. 물론 누군가가 또 서점을 열 수는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럴 사람은 없다”

서점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나 독립투사의 처절한 각오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고향에 제대로 된 서점 하나 운영하지 못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생각은 그래서 나왔을 것 같다. 어쩌면 미련하게 거액을 투자해서 서점에 매달리는 그는 산과 함께 살아온 사나이가 아니었으면 그러지 못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을 사든 안 사든 서점에 한 번 들러 책을 들춰보며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서 문화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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