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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정의사회는 존재하는가
오피니언

정의사회는 존재하는가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2/12/18 10:09 수정 2012.12.18 10:09



 
 
공직자에 대한 평가는
청렴도 말고도 있다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시민들이 편하게 사는 사회
그것이 도시의 미래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하버드의 석학 마이클 샌덜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공리(公利)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共同善)을 고민하는 것’이라 해석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異見)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는가. 석학의 강론이 아니더라도, 각각의 시민들이 제 위치에서 좋은 삶의 가치를 찾고 타인의 행복을 함께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정의 아니겠는가.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찾고, 기업가는 충분한 값으로 노동력을 끌어내어 돈을 벌고, 학자는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성장하도록 돕고, 부모들은 올바른 심성을 가르쳐 자식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 각각의 정의를 다 논하기 전에 우리 지역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양산은 전국의 200여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서도 경제규모나 산업인구, 조세부담이나 역동성 그 어디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경남도 제3의 도시다.

그러한 위치에 있는 우리시의 정의사회로서의 평가는 어떠한가. 지난해 국가기관의 청렴도 평가에서 거의 최상위권에 올랐고, 올해도 2등급 수준은 유지했다. 하지만 몇가지 시정의 주요 시책 추진과정에서 본 공직자와 선출직 지방정치인의 도덕적 수준이나 정의감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특히 원칙과 명분을 지켜나가는 노력에 있어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최근 시와 시의회는 합심하여 몇 가지 비중 있는 안건을 처리했다. 디자인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공원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고, 관변 사회단체에 현금 15억원을 사무실 구입비로 주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공단 근로자 체육시설을 위해 100억원에 달하는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데 합의했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디자인센터에 대해서는 공원부지의 무상제공과 입지 부적정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사회단체 회관 건립비 지원은 부적절한 전례가 될 수 있기에 이미 수 차례 의회에서 거부해 온 사안이었다. 공단 근로자 체육시설은 그 필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사업비가 예산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됐다.

하지만 모두 통과되고 관철되었다. 반대하는 의견은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로 치부되곤 했다. 이 과정에서 시의원들의 안중에 시민은 없었다. 아니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만의 논리에 함몰되고 말았다. 시민의 머슴이 되겠다던 그 옛날의 읍소는 간 곳 없고, 시민의 파수꾼 역할은 잠시 팽개쳐졌다.

30만 명품도시는 어떤 미래의 표상인가. 시민의 혈세가 제대로 심의되지 않은 채 낭비되고, 시의 재산이 불법적으로 외부기관에 양도되어도 입안하는 양산시나 감시하는 의회가 한 통속이 되어 양심의 가책 없이 밀어부친다면 준법사회니, 위민행정이니 하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작은 도둑은 없을망정 큰 도둑이 시의 곳간을 바닥내고 마는 현실에서 청렴도 측정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기서 잠시 공무원의 신인도가 높은 북유럽의 이야기를 해보자. 네덜란드 제 2의 도시 로테르담에서 두 번의 시장을 역임하고 내무장관에 발탁된 정치인이자 공직자가 있었다. 머지않아 총리가 될 재목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런 그가 시장 재임시 시 예산을 공무가 아닌 용도에 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시의회에서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조사에 나섰다. 엄격한 조사 결과 우리나라 원화로 2백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 공용이라고 보기 애매한 항목에 지출되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그 나라 시민들 사이에 이를 묵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총리가 나서 장관의 거취 결정을 요구하자 그 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심각한 비리는 아니지만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데 잘못이 있음을 인정했다.

용기있는 자 나서서 물어보라. 20년이 지난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이 국민생활에 나은 삶을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이냐고. 지방의회의 존폐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살아남을 자신이 있을까. 의정비 수천만원이 아깝다고 말하는 서민이 부지기수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비단 학자들에게만 통할까. 권력에 아첨하는 자들에 대한 경구(警句)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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