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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초대 시] 늙은 조개
사회

[초대 시] 늙은 조개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2/12/18 11:15 수정 2012.12.18 11:15




 
↑↑ 김순아
아호 湖堂
부경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전공 박사수료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부지부장
부경대학교 강사
고등‘국어/언어’ 학원장
 
찬거리로 사다 도마 위에 올려놓은 조개 한 마리

죽은 듯 입을 앙다물고 있다

세월의 무늬가 짙게 새겨진 노인처럼

칼끝으로 위협해도 꿈쩍 않는다

흔히 입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죽은 조개라고 하지만

실은 입을 열면 혼자 삭여온 말들 거침없이 쏟아질까봐

늙은 몸 방치하고 소식조차 두절한 자식들

그 삶에 폐 끼치고 그 가슴에 비수되어 꽂힐까봐

생의 마지막 여력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있는 것이다

입안에 오랫동안 가둬두어 굳어진 혀끝이

입술을 열고 나와 자식, 손자 핥고 싶은 맘 왜 없었을까만

가슴에 끝없이 고여 오는 서러운 말들

물꼬 터진 듯 쏟아내고 싶은 맘 왜 없었을까만

입안에 고이는 침 삼키며

세월이 푹푹 삶아도 끝내 입 열지 않는 늙은 조개

저 앙다문 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왜 침묵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이미 죽은 조개니 쓸모없는 조개니 해온 것이다


- 김순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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