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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골목상권의 강소업체
“편한 것만 찾다보면 결국 외면받기 마련”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3/01/15 10:10 수정 2013.01.15 11:57
①중부동 궁중떡집






번거로운 정성에서 비롯한 ‘손 맛’
손님이 손님을 이어주는 소문난 집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기자의 방문에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지만 분주한 손놀림은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 권재식(67)씨는 반죽을 하느라 바쁘고, 어머니 장옥자(63)씨는 경단 만들 재료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준비한다. 아들 권태운(38) 씨는 호박 가루를 저울에 달아놓고는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며느리 주은경(32) 씨는 밀려드는 주문전화를 메모하면서 갓 쪄낸 떡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지난 9일 중부동에 위치한 ‘궁중떡집’은 설 명절을 한 달이나 앞두고 있음에도 밀려드는 주문전화로 가게 안이 분주했다.

권재식ㆍ장옥자 부부가 1995년 울산에서 시작한 수암떡집은 지난 2000년 5월 양산으로 옮겨 오며 ‘궁중떡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아들 태운 씨가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떡의 고급화에 도전하면서 바꿔 단 이름이다.

↑↑ 중부동 신도시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궁중떡집'을 운영하는 권재식(사진 오른쪽), 장옥자(사진 왼쪽) 부부가 손수 경단을 만드는 사이 손님이 들어와 주문을 받고 있다. 사진 가운데는 며느리 주은경 씨.
좋은 재료와 정성스런 수작업


궁중떡집의 영업 노하우는 사실 간단하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제조 과정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한다. 떡에 들어가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원산지와 계약재배를 한다.

지난해엔 좋은 호박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해남의 농가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밤떡에 들어가는 밤 역시 작업하기 쉬운 ‘굵은 밤’이 아니라 손질은 번거로워도 맛이 좋은 밤을 골라 한 알 한 알 손수 손질한다. 경단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구슬만큼 떡을 떼어내 속을 넣고 일일이 손으로 굴려 고물을 입힌다.

까다로운 재료 선택에 일일이 손맛을 담다 보니 제작 시간은 더디기 마련이다.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궁중떡집이 소비자들에게 ‘진정성’과 ‘자부심’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노력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공장 떡 양산으로 시장 왜곡


사실 떡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종 기념일에 빠질 수 없는 축하음식이었다. 그 시대 떡은 전통음식임과 동시에 일상의 음식이었고, 맛있는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식습관이 바뀌면서 떡은 현대 소비자들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생일상과 각종 기념일에는 떡보다는 케익이나 빵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떡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 권태운 씨가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6회 전국 떡 명장 선발대회에 작품으로 출시한 떡의 모습. 권 씨는 해당 작품으로 농림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궁중떡집’ 역시 이러한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수암떡집’ 간판으로 울산에서 장사를 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대대로 이어진 손 맛 하나 믿고 양산으로 옮겨왔지만 개업 후 2년 동안 급격히 매출은 줄어들었고, 주변에 가게의 존재를 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전체 떡 소비시장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공장에서는 대량으로 떡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장 떡’이 마트와 빵집 등 소비자의 손길이 닿기 쉬운 곳부터 점령하기 시작했다.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은 2006년 프랜차이즈 떡집 ‘빚은’을 출시하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초콜릿, 블루베리 등을 넣은 퓨전 떡과 빙수 메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5년 만에 매장은 전국 160개로 늘었다.

떡 시장이 이처럼 대형화하자 떡집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접 떡을 만드는 대신 공장에서 생산된 떡을 구입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편하기 때문이다.

맛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쌀가루와 씨름하지 않아도 됐다. 이들 가게는 소비자들이 ‘공장 떡’과 수제 떡을 구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결국 똑같은 공장 떡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떡은 맛과 개성을 잃었다.


↑↑ 궁중떡집에서 생산한 제품 모습.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박고지모듬떡, 왕송, 웰빙떡, 이바지떡.
기본을 잘 지킴으로 승부


“공장 떡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떡집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장사가 가능하니까요. (떡을 만들기 위한) 기계가 필요 없으니 자본도 적게 들고 인력도 필요 없게 됐죠. 하지만 공장 떡이 시중에 깔리면서 모든 떡집의 맛이 똑같아집니다. 저희 집이 좋은 재료를 쓰고 많은 수작업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집들보다 조금 비쌉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항상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죠. 왜일까요? 당연히 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끊임없이 들락였다. 집이 근처에 있다는 손님은 최근에야 궁중떡집을 알게됐지만 이제는 어느새 단골이 됐다. 자녀의 학교 행사에서 처음 떡을 접했다는 다른 손님은 요즘 궁중떡집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처럼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부르는 궁중떡집은 공장 떡의 편리함 대신 좋은 재료와 정성을 선택했고, 이는 골목상권 성공의 핵심 비결이 바로 ‘기본을 잘 지키는 것’에서 출발함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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