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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나는 돈 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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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쓸 데가 없다”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01/29 10:11 수정 2013.01.29 10:11



 
 
인사 청문회장에서 보는
지도층의 탐욕과 관행은
계층간 위화감의 뿌리다
남보다 많이 가진 자들이
도덕적 모범을 보일 때
문명사회는 선진화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부적절한 특정업무경비 지출을 따지고 있는 시간에 외신은 소아마비 퇴치에 2조원을 내놓겠다고 밝힌 빌 게이츠를 보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이지만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 부인과 함께 설립한 자선 재단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게이츠는 이미 30조원 이상을 사회에 기부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것 보다 훨씬 가치있다고 말하는 그는 이 시대 지도층의 전범(典範)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들어 IT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에 공헌한 그는 그 댓가로 보통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게 됐다. 추정 재산만도 70조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재단을 이용한 사회 환원에 쓸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주 지상파 방송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여관방 신세를 지고 있는 극빈층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택시를 몰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가장이 10대의 두 딸과 함께 1년 이상 여관에서 생활하는 모습과 몇 년째 여관에서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다 큰 딸을 돌보느라 정부지원금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모녀의 딱한 사정이 보는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다행히 긴급구호지원으로 위와 비슷한 일부 세대에 대해 300만원을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많은 결손가정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비단 방송에 나온 가족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가난과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로 ‘보편적 복지’를 외치고 있지만 그 혜택이 구석구석까지 빈 자리 없이 미치게 하려면 정책 입안자부터 실행단계에 종사하는 말단 공직자까지 마음가짐부터 달리해야 한다.

이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자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후보에 오른 사람은 ‘위장 전입’이나 ‘논문 표절’ 등 탈법의 사례가 어찌 그리도 한결같은 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 나라 부유층들은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법을 다루는 인사들 마저 자신의 문제에서는 위법이나 탈법을 관행으로 미룬다는 것이니 일반 국민들에게 준법을 강요할 명분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공금을 개인 돈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해외 출장에 가족동반 관광을 끼워넣고, 자녀의 출ㆍ퇴근에 관용차를 쓰게 하는 부정(父情)에다 유류 절약을 위해 시행하는 자가용 2부제 때면 번호가 다른 관용차를 타고 다니는,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최정상에 있는 지도층이라니 민초들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나마 위안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3만불을 바라보는 G20 회원국의 하나인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있는 요인은 그것이 비단 소득의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선진국 개념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선진국은 경제면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를 망라하여 종합적으로 판단, 비교적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는 정의가 유효하다. 중동의 산유국들이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적하는 양극화 현상은 절대적 빈곤의 고초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심리적 반항감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 밑바탕에는 ‘부유층 사람들은 서민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위 공직자의 인선 과정이나 청문회 등에서 지나치게 인신공격적인 문제들이 제기되곤 한다. ‘배가 아프다’ 보니 흠집내고 싶은 충동이 자극되는 것이다. 이 점은 지방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우리 시의 시장이 자신의 재산과 관련해 여러 가지 루머에 시달린 것도 따져보면 그가 공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도덕재무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의 부(富)는 그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다시 사회로 환원돼 다른 부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윗물이 맑음으로써 공정사회는 시작되고 국민들의 위화감은 해소되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듯, 훌륭한 장수는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들을 감복시킨다. 전장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음은 물론, 평시에도 스스로의 처신을 깨끗이 함으로써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많이 소유하고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솔선수범해야 한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이미 잘 먹고 잘 입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돈 쓸 데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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