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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군대 안 보내고 거액 물려주고..
오피니언

군대 안 보내고 거액 물려주고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02/26 09:41 수정 2013.02.26 09:41



 
 
재벌가의 수백억대 재산증여
고위지도층의 병역면제 백태
평범한 국민들의 가슴 찢어놔
돈이 자식 망칠까 사회 내놓는
외국부호 사례 듣지도 못하나

10년쯤 전에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 사이에 이런 유머가 돌았다.

“아버지가 지도층이면 아예 안 가고, 부잣집 아들이면 안 가거나 편한 데로 빠지고, 무지랭이 집 아들만 최전방 간다”

현재 육군 기준으로 21개월에 불과한 군 복무기간도 견디기 어려워 하는 젊은이들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입대를 ‘국가를 위한 신성한 의무’로 여기지 않고 무능한 아버지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최근 새 정부의 고위직 공직자 인선에 따른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대상자가 본인은 물론 자식까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회적 파장이 크다. 아이들의 신랄한 조크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필자의 아들은 육군에 입대해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강원도 향로봉 인근에서 경계근무를 했다. 북한군 초소와 마주 보고 있는 혹한의 전선에서 2년을 보내고 온 아들은 ‘엄청 힘들었지만 대단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겨울 서너달은 씻을 물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샤워는 꿈도 못 꾸었지만 더 괴로운 것은 얼어붙은 화장실의 용변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TV에서 전하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병역 면제 스토리를 들으면서 국민들은 많은 것을 새삼 느꼈을 터이다. 첫째는 평소 병리학 지식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다양한 질병이 있구나 하는 것이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젠 알아도 별 수 없지만. 둘째는 저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도 우리나라 국방이 잘 지켜지고 있는 데 대한 경외감이다. 놀랍지 않은가. 60만 대군의 범주에 들지 않는 저 유능한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그 시간을 보냈을까. 아마도 유학이나 고시 준비 등으로 대신 국가에 헌신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지난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아들에 대한 병역 문제를 제기한 소위 ‘병풍(兵風) 사건’으로 불의의 낙선을 했던 과거지사가 생각나면서 지금 후보자들 가운데에도 억울하게 치부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본다.

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면제를 받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국민정서는 그와는 별개다. 대부분 입대자는 허리가 조금 아파도, 눈이 조금 나빠도 크게 망설이지 않고 훈련소로 향한다. 그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식을 군대에 보낸 사람이 이 땅의 아버지들이다. 그런데 고위공직에 임명받기 위한 인사청문회에 나와서 “내 아들은 병자요”하면서 병역 면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후보자들의 답변을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허망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1980년대 이런 유머도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해외 유학생들에게 “고국에 전쟁이 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유태인과 우리나라 유학생 대부분은 즉시 짐을 챙기러 기숙사에 가겠다고 답했다.

다만 그 이유가 달랐다고 한다. 유태인은 고국으로 달려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서이고, 우리 학생들은 고국에서 찾을 수 없는 다른 곳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란다. 이런 부끄러운 유머에 분개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내 최대 현금재벌이라는 세간의 평을 듣고 있는 롯데가의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자신의 자녀와 손자에게 편법증여를 통해 수백억원대의 재산증식을 도와준 부분에 대해 감사원이 ‘편법 증여’에 대한 특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다. 신 회장의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가 신 회장에게 빌린 돈 50여억원에 자기 돈을 합친 120억여원으로 2005년 대선주조의 비상장주식을 사들였다가 2년 뒤 매각해 1천1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빌린 돈 50억원과 양도세 200여억원을 제외하고도 8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올린 것이다. 물론 신준호 회장의 대선주조 경영권 다툼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 두 살박이 손자가 거액의 증여를 받은 셈이 됐다. 이런 재벌들의 자식사랑이 어찌 일반인들의 눈에 곱게 비칠 수 있겠는가.

같은 날 외신에서는 빌 게이츠의 기부서약에 참가한 세계의 부호들이 소개되었다. 재산이 178억달러나 되는 러시아의 광산재벌 포타닌은 “너무 많은 돈이 자식들을 망칠까 봐”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인도 3위의 IT업체를 운영하는 아짐 프렘지는 “부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바란다. 최소한 국민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만 말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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