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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골목상권의 강소업체
“솔직히 불황이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3/03/19 14:15 수정 2013.03.19 03:22
③ 양산시 중부동 ‘울통치킨’




“솔직히 문을 닫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안 해요. 시장이란 곳은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따라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먹을거리를 맛보는 곳인데 세월이 지나면 그 모든 게 추억이 되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로 15년 전 가족과 함께 먹었던 치킨의 맛은 세월이 흐르면서 추억이 되고, 그 때의 맛을 그리워하게 되거든요. 그게 시장 가게의 매력인 것 같아요”

‘골라잡아’를 외치며 호객행위에 바쁜 젊은 상인과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채소 한 짐을 풀어놓고 말 한 마디 없이 지나는 손님을 쳐다만 보는 노파.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명이 오가며 ‘사람냄새’ 풍기는 곳. 바로 ‘시장’의 모습이다.

이런 ‘사람냄새’ 풍기는 시장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15년째 ‘닭 장사’를 해 온 가게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양산에서 이 집 모르면 간첩이라 부를 정도로 유명한 곳. 바로 중부동 남부시장에 위치한 ‘울통치킨’이다.

‘울통치킨’이 남부시장에 문을 연 건 약 15년 전이지만 사실 통닭 가게를 시작한 것은 35년도 넘는다. 35년 전 최종덕(67) 씨와 아내 황혜숙(59) 씨가 어곡공단 한켠에서 문을 연 가게는 당시 공단 근로자, 특히 중국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최 씨 부부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자신들을 응원해 줬던 이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 시절 단골들은 15년 전 지금의 위치로 가게를 옮겨 온 후에도 큰 힘이 됐다. 장을 보러 왔다가 최 씨 부부의 가게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하며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했던 것. 가게 위치를 옮겨도 단골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손님과 약속이 돼 버린 ‘연중무휴’


‘울통치킨’은 아침 7시 30분에 문을 열어 저녁 11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 쉬는 날은 1년에 단 이틀 설과 추석 당일뿐이다. 하루 16시간씩 363일을 일하는 셈. 몇 년 전부터 가게를 책임지고 있는 딸 최정아(37) 씨와 사위 조창환(40) 씨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힘들죠. 어떤 때는 제가 어딘가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항상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 많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쉴 수가 없어요. 설과 추석을 빼고 연중무휴라는 게 어느새 손님과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 돼 버렸거든요”

최 씨 스스로 ‘갇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탈을 꿈꾸기 힘든 상황이기에 함께 가업을 이어보자며 남편을 구슬린 게 미안하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제쳐놓고 최 씨가 부모의 가게를 이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15년 간 만나온 ‘사람’과 시장 가게로 쌓아온 ‘전통’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15년이 흘렀는데 그 시간동안 저도 모르게 이뤄 놓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시장 속에서 15년 간 장사를 해온 우리 가게는 나름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저는 수많은 손님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으며 성숙해 왔더군요. 전 그걸 잃고 싶지 않았어요”


박리다매, 조류독감도 이겨내


박리다매(薄利多賣). ‘울통치킨’ 영업 기술의 핵심이다. 맛과 더불어 ‘시장 가게’에 걸맞게 싼 가격으로 경쟁력을 지켜 나간다는 작전이다. 35년 전 처음 가게를 시작하던 당시 7천원이었던 후라이드 한 마리 가격이 현재 1만2천원. 35년 동안 5천원이 오른 셈이니 다른 물가에 비해 분명 저렴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두 마리 치킨’의 공습(?)에 한 마리 값 치곤 비싸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실제로 ‘울통치킨’은 한 마리에 1만2천원이니 두 마리면 2만4천원. ‘2마리 치킨’ 가격이 보통 2만원 내외니까 단순 비교로만 보면 분명 비싸다. 하지만 최 씨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마리당 가격만 보면 분명 저희가 비싸게 느껴지죠. 하지만 양을 보면 조금 달라요. 같은 2마리를 놓고 보면 우리가 조금 더 많아요. 그래서 가격에서 두 마리 치킨과 사실 별 차이가 없는 거죠. 물론 맛이 없다면 싼 가격도 소용없겠지만…”

비슷한 가격에도‘박리다매’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1만2천원으로 먹을 수 있는 치킨이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최 씨는 불황을 경험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처음 논란이 되던 당시에도 한 달 정도 매출이 줄어들긴 했지만 적자가 날만큼은 아니었다고. 오히려 줄어든 주문 덕분에 드라마를 보며 쉴 수 있어 내심 기쁜 마음도 들었다는 최 씨의 말에 지금도 불황에 대한 걱정은 없는 모습이었다.


명품손님도 입맛은 추억을 따라


이날 기자는 식당에서 가장 한가하다는 때인 오후 2시 반에 맞춰 가게를 방문했다. 하지만 ‘울통치킨’ 식구들의 손놀림은 쉬지 않았다. 어머니 황혜숙 씨가 “지금이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며 기자를 반겼지만 그 역시 식탁 한쪽에서 물김치를 놓고 늦은 점심을 급히 해결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손님들이 밀려왔다. 딸 최정아 씨가 손님 일행 중 한사람에게 “이모 머리 자르셨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봐서는 그들 역시 단골인 듯 했다. 3시를 넘어가자 주문 전화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인터뷰를 하는 기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급한 마음의 기자와 달리 ‘울통치킨’ 식구들은 여유가 넘쳤다. 물론 손놀림과 발걸음은 바삐 서두르지만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치킨과 맥주를 주문한 손님들 역시 보채지 않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 순간 ‘이게 바로 시장이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대가 변해도 부모가 사다준 치킨의 맛은 잊지 않는다는 최 씨의 말. 최 씨가 경제가 발달하고 나날이 편리함을 찾는 시대에 전통 시장이 작아질지는 몰라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역시 ‘사람’과 ‘추억’이 함께 숨 쉬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울통’, 울산통닭 줄임말이 아냐”

손님들 주변 가게와 혼동하기도
‘울통’은 ‘우리 통닭’ 줄임말

사람들은 흔히 ‘울통치킨’을 ‘울통’이라 줄여 부른다. 그리고 그 이름이 ‘울산통닭’의 약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황혜숙 씨는 “‘울통’은 ‘우리 통닭’이란 의미를 줄인 것이지 ‘울산통닭’의 줄임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 ‘울통치킨’ 입장에서는 ‘울산통닭’의 줄임말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큰 이유가 있다. ‘울통치킨’ 바로 곁에 진짜로 ‘울산통닭’이란 이름의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시작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구분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결국 손님들은 ‘울통’을 울산통닭의 줄임말로 이해하고 ‘울통치킨’ 입장에서는 남의 가게 홍보만 해주는 셈이 됐다.

“뭐 단골들이야 울산통닭과 울통치킨이 다른 가게라는 사실을 아시지만 처음 저희가게를 찾으시는 분들은 다들 울산통닭과 헷갈려 하시죠. 맛이야 손님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울통치킨을 울산통닭으로 오해하시면 저희 입장에서는 섭섭한 게 사실입니다. 저희 ‘울통치킨’은 ‘울산’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그냥 맛있는 치킨을 구워내기 위한 ‘우리 통닭’의 뜻이란 사실을 꼭 기억해 주세요”

황 씨의 말대로 ‘울통치킨’ 제품이건, ‘울산통닭’ 제품이건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골라 먹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울통치킨’의 ‘울통’을 결코 울산통닭의 줄임말로 이해하지 말아달라는 주문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뭐 결과적으로 ‘울통’이란 줄임말 덕분에 ‘울통치킨’과 ‘울산통닭’ 두 곳 모두 장사가 잘 된다면 더 좋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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