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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 정명(定名) 600년과 웅상 민심..
오피니언

양산 정명(定名) 600년과 웅상 민심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04/23 09:27 수정 2013.04.23 09:27



 
 
양산 정명 600주년 기념
다양한 기념사업 의의 있다
하지만 웅상이 양산으로
편입된 건 100년 남짓해
양산시민으로 함께하려면
정서적 동질감 갖도록 해야


양산(梁山)이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지 600년이 된다고 해 시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양산은 신라 때 삽량주라 불리다가 경덕왕 16년(서기 757년) 양주(良州)로 호칭이 바뀌었고,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는 양주(梁州)라 했다.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 때 양산군(梁山郡)으로 명명됐다. 정확하게 600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경상남북도로 분리된 건 1896년 고종 때의 일이다.

500주년이 된 해는 일제강점기 초기였으므로 특별히 기념하고 즐길 여건이 되지 못하였고, 100년 후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지금의 600주년 기념사업은 현직 시장으로서는 매력적인 시민화합의 동기부여가 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시는 홍보와 기념을 위해 시목인 이팝나무 600그루를 심고 출향기업인의 후원을 받아 양산대종을 건립할 예정이다. 또한, 별도의 로고를 제작했으며, ‘양산 600주년 역사홍보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참여할 행사는 타임캡슐 제작, 양산군수 부임행사 재현, 삼장수기상춤의 확대전파를 비롯해 기념음악회, 전설연극제, 마라톤, 자전거 대회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렇듯 시가 양산 정명 600년을 기념해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 굳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웅상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서창, 소주, 평산, 덕계 등 4개 동으로 이루어진 웅상지역은 6년 전인 2007년 4월 1일 분동되기 전까지는 웅상읍이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존재했었다. 면적으로는 13%에 지나지 않지만 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곳으로 정서상 ‘웅상사람’이라는 귀속감이 상당하다.

여기에는 지역의 역사 연혁이 배경이 되고 있다. 웅상은 원래 울산 울주군에 속해 있다가 조선 고종 43년 1906년에 양산군으로 편입되었다. 100년 남짓 된 거다. 지형상으로도 험준한 천성산이 가로막혀 시청소재지인 서부양산과는 교류가 어려웠다. 최근 법기터널이 임시개통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청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웅상 인구 대부분이 부산이나 울산의 경제권에 속하게 된 것이다.

지방자치시대가 재개되면서 단체장 후보들의 웅상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웅상의 민심이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국지도60호선의 월평구간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법기터널을 우선개통한 것도 웅상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동연 시장의 핵심정책 가운데 하나도 ‘퍼스트 웅상’이다.

웅상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이 정책의 발상은 사실상 그동안 ‘웅상이 먼저이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큰 사업의 추진도 눈에 띄게 늘었다. 국도7호선 우회도로 개설, 웅상체육공원, 소주동 영어도서관과 3D 체험관 등 웅상지역의 기반시설과 문화 인프라의 확대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양산 정명 600년을 바라보는 웅상 주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전통적인 정서상 울산의 뿌리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십년 째 양산의 변방으로 소외되고 무시돼 왔다는 의식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당국에서는 시 단위 행사의 주무대를 서부양산에 국한하지 않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삽량문화축전을 비롯해 각종 축제와 체육대회를 개최함에 있어 웅상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웅상주민들의 염원인 부산도시철도 1호선 연장사업은 노포~북정선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물 건너 갔다는 체념을 불러왔고, 시민아카데미의 웅상 개최도 슬며시 사라졌다. 양산사랑 역사문화 탐방의 코스에 웅상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천성산 터널을 뚫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구상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오고가는 길이 단축되어도 마음 속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웅상의 소외감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양산 정명 600년의 의미가 아무리 크다 해도 웅상지역에서는 내 것처럼 다가오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위적인 사업추진 만으로 정서적 유대감이 조성되기는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많은 예산의 투자와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에도 불구하고 부산이나 울산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주민들이 상당하다는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면, 여러 부문에서 동반자적인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진솔하고 실제적인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퍼스트 웅상’이란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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