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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골목상권의 강소업체
“막걸리? 엄마의 마음으로 빚어야죠”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3/06/18 12:03 수정 2013.06.18 12:03
물금읍 물금리 물금막걸리




↑↑ 김민성 대표는 전통 막걸리의 경우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제조과정에서 발효가 잘 될 수 있도록 수시로 저어주는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대가 지켜온 70년 전통 ‘물금막걸리’
본연의 맛 고집하며 뚝심 있게 한길
첨가물 넣지 않은 전통방법이 ‘비법’

막걸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리나라 고유한 술의 하나. 맑은 술을 떠내지 아니하고 그대로 걸러 짠 술로 빛깔이 흐리고 맛이 텁텁하다’고 정의한다.

실제 막걸리는 이름 그대로 규칙 없이 대충 지금 바로 막 걸러 마시는 술이다. 비록 ‘규칙 없이 대충 막 걸러 마시는 술’이지만 고려시대 부터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을 마셨다 하는 기록을 보면 적어도 600년은 넘은 역사를 가진 ‘전통주’다.

전통 음식이 그러하듯 막걸리 역시 지역마다 제조법과 그 맛이 조금씩 다르다. 과거 ‘주막’에서 팔던 막걸리도 있었지만 집집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술을 빚다 보니 맛도 다를 수밖에. 현재 4~50대 이상 세대라면 어린 시절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는 술심부름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과 함께해온 술이다.

물금읍 물금리 750-1번지에 위치한 ‘물금막걸리’ 역시 역사가 깊다. 김민성(42) 대표가 운영하는 물금막걸리는 현재 3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김 대표의 조부 김유전 씨가 1946년 부산시 금정구 에서 시작한 양조장이 6.25전쟁 직후 양산으로 옮겨와 김 대표의 부친 김희도, 숙부 김정도 씨를 거쳐 지금에 이어지고 있다.


소주ㆍ맥주에 밀린 막걸리
대형업체와 전쟁까지 ‘2중고’


하지만 70년이 넘는 전통이 결코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600년 넘는 역사의 막걸리가 서서히 우리네 술자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가 어느새 ‘국민 술’로 자리매김했고, 막걸리는 가끔 마시는, 특별한 날 생각나는 술이 되고 있다. 전통은 그냥 옛것 정도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물금막걸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역에서 열리는 동네잔치에 당연히 주인공이었던 ‘막걸리’는 소주와 맥주에 점차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낮은 도수의 소주가 출시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형 양조업체와의 경쟁으로 전통 막걸리 업체가 속속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은 지역 막걸리 업계를 더욱 어둡게 한다. 실제 양산지역만 해도 웅상지역에서 전통을 자랑하던 업체가 지난해 결국 문을 닫았다. 물론 아직 상북과 하북지역에서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막걸리 업체가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마을’이라는 판매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전통과 시장성(판매 영역)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전통 막걸리로써 양산을 대표하는 막걸리는 ‘물금막걸리’가 유일한 셈이다.

“솔직히 대형업체들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전통 막걸리가 버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물금막걸리도 7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지만 사실 이제는 지역의 마니아들만 즐기는 수준입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매체를 통해 광고를 거듭하는 대형 주조업체, 특히 부산, 경남지역을 바탕으로 규모를 확대해가는 대형 양조업체에 밀려 물금막걸리도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웰빙’ 열풍에 세계 누비던 막걸리
2년 반짝 열풍 이후 계속 내리막길


막걸리도 좋은 시절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3~4년 전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면서 세계 시장에서 막걸리의 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막걸리의 효모, 효소, 젖산균 등은 막걸리를 건강식품 대열에 올려놨고, 항암효과가 있다는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 결과는 막걸리 열풍에 불을 붙였다. 

김 대표를 포함해 직원이 2명뿐인 물금막걸리. 막걸리 열풍에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다. 김 대표는 잠을 쪼개가며 배달 트럭을 몰았다. 24시간 양조장 불빛은 꺼지지 않았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대형업체와의 경쟁에 힘든 현실도 이 시기만큼은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모처럼 ‘호기’를 달리던 막걸리 열풍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식어버렸다. 한류열풍에 막걸리 인기까지 겹쳐 일본에서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의까지 들어왔지만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막걸리 열풍이 불 때는 솔직히 괜찮았죠. 너무 바빠서 술을 만들어내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공장이 작다보니 더 그랬죠. 그런데 이마저 2년이 채 못 돼 숨이 죽더라고요. 지금이요? 지금도 막걸리 시장은 계속 내리막이에요”


“그래도 전통의 맛은 지켜야죠”
‘변종’ 거부하며 ‘본연의 맛’ 강조


시들어버린 막걸리 열풍은 막걸리 업계 전반에 걸쳐 어려운 경영현실로 다가왔다. 각 업체들은 생존 방법 찾기에 나섰고, 소주가 알코올 도수를 낮추듯 막걸리는 단맛을 높였다. 여기에 각종 향을 첨가하고 전통 용기를 벗어나 ‘캔(can)’에 담긴 막걸리를 내놓기도 했다. 김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종’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 주변에서도 막걸리의 단맛을 더 내기 위해 이런 저런 첨가물을 넣어 보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겐 소귀에 경 읽기. ‘막걸리 본연의 맛’을 고집하는 김 대표에게 이들은 ‘변종’일뿐이다.

“우리 막걸리 업계가 자꾸만 변종을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적어도 저희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막걸리는 막걸리다워야 하는 거잖아요. 막걸리가 막걸리 맛이 나야지 다른 맛이 나면 그게 막걸리입니까? 젊은 세대, 여성분들의 기호에 맞추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막걸리는 ‘막 걸러낸’ 전통의 그 맛이 나야죠”

김 대표는 막걸리 전통의 맛을 ‘버틸 수 있는 힘’이라 표현했다. 대형 양조업체의 다양한 퓨전 막걸리의 파상공세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전통의 맛’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달라지는 소비자 입맛에 맞춰 막걸리도 변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 변화가 ‘막걸리 본연의 맛’을 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큰 바람은 없습니다. 공장을 키우고 판매처를 확대시키는 것도 별로 욕심나지 않아요. 그저 저희 막걸리를 아껴주시는 분들과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음주는 금물이겠죠? 하하~! 끝으로 굳이 저희 물금막걸리를 홍보하자면, 아직 물금막걸리를 맛보지 못한 애주가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한 번 드셔보십시오. 이 말로 저희 제품 자랑을 대신하겠습니다”

큰 욕심 없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웃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김 대표의 소망. 어쩌면 김 대표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가던 그 옛날 우리의 추억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의 384-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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