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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사초(史草) 폐기 논란에서 배운다..
오피니언

사초(史草) 폐기 논란에서 배운다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07/23 09:01 수정 2013.07.23 09:01



 
 
권력남용이나 방종의 결과물
책임소재 밝혀 추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진과정 기록 보관이 필수
의회 기능이 중요한 이유다

역사 편찬의 기초자료인 사초는 후대의 평가를 좌우하는 귀중한 문건이므로 보존의 중요성이 남다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지 않음이 확인됨에 따라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서 출발한 여야의 대치가 정부 공식기록인 사초의 폐기 논란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가 건국해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올라오는 각종 문서를 연대별로 정리한 자료와 함께 직전 왕 재위 시의 사관(史官)들이 작성해둔 사초를 모태로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전임 사관들은 품계는 비록 낮았지만 항상 궁중에 들어가 입시(入侍)해 임금의 언행을 비롯해 신하와 함께 국사를 논의, 처리하는 것을 보고들은 대로 직필하여 사초를 작성했다. 조선시대의 사법(史法)이 매우 엄했기 때문에 사관은 사실을 직필할 수 있었다. 간혹 왕이나 상관에 의해 사초에 대한 비밀엄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사화(士禍)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강직하게 의무를 다한 사관들이 있었기에 후세에 지난날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물의 역사는 현대 정치와 행정에서도 답습돼야 한다. 또한 대통령과 정부에 국한돼서는 안된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급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지역개발정책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추진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보존돼야 함은 사필귀정이다. 경전철사업의 무리한 추진으로 막대한 재정 손실을 안겨준 지자체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 그 책임을 물으려 해도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시대에 시장의 권한은 막강할 수 밖에 없고, 시의회 의원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한해 6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운용하는 양산시로서는 예산 낭비를 예방하는 문제와 함께 국책사업의 추진과 도시계획의 입안, 특혜나 탈법의 소지가 있는 인ㆍ허가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후에 책임 소재를 확실히 가릴 수 있도록 상세한 추진과정의 기록 보존이 필요하다 하겠다.

최근 시의회를 중심으로,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북정선 연장사업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경제타당성의 근거가 되는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과 ‘상권의 대도시 빨대 효과’와 ‘시 외곽지역 교통의 불편 초래’라는 역기능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자체의 실패사례에서 얻는 교훈도 있는 만큼 대형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주요 인물의 언행이 기록되고 보존돼 책임소재를 가리는 자료로 활용돼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밖에도 진행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는 사안은 얼마든지 있다. LH공사의 사송보금자리주택지구의 용도변경 시도 과정에서의 양산시와의 교감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디자인센터 건립에 제공된 공유재산의 처리와 인ㆍ허가에 관련된 공직자들의 판단과 행정처리 과정도 기록이 남아 있어야 차후 문제 발생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석계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양주중학교 환경문제는 공단개발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발생할 학습권 침해와 공해로부터의 안전장치 부족으로 인한 이전 요구를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입안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지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가. 조선시대처럼 사관이 따라다니면서 기록할 수도 없고, 공청회나 주민설명회처럼 일회성 모임의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핵심은 의회의 기능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논란이 예상되는 사업이나 정책, 인ㆍ허가에 대해 시정질문이나 사무감사, 또는 상임위 활동을 통해 관계자들을 불러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라는 것이다. 의회의 회의는 모두 공개될 뿐 아니라 속기록을 통해 보관되는 것이니만큼 후일 특정 사안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양산시의 관료 조직은 물론 선출직 정치인들의 공적(公的) 행위는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그 책임이 막중할 때에는 구상권(求償權)까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의 남용이나 무책임한 방종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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