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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아, 고단한 서울의 달
오피니언

아, 고단한 서울의 달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09/03 08:49 수정 2013.09.03 08:50





 
 
추석절 민족 대이동은
수도권 집중 정책의 산물
지방자치는 시행하고도
자립 재정은 열악하고
부의 집중현상은 여전해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처럼 어려운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집권 6개월을 보내면서 부동산 대책과 세제 개편, 교육제도 개정 등을 통해서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반 국민들의 씀씀이를 줄이려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부유층이나 중산층 이하 서민들까지 지갑을 꽁꽁 닫는 극심한 소비억제가 지속되고 있다.

추석은 설과 더불어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지만 특히 옛 농경문화의 유산으로 수확한 농산물을 조상에게 바치고 가족과 이웃이 한데 모여 자축하는 추석은 즐거운 명절이다. 게다가 조상의 묘를 살피고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자리가 돼 미풍양속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전국 각지에 떨어져 사는 친지들이 대부분 고향을 찾게 되고 이런 귀성(歸省) 행렬은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수많은 도로를 메우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얼마 전 TV에서 귀성열차 승차권을 예매하는 행렬을 지켜본 적이 있다. 새벽부터 늘어선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 민족의 귀소본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고향가는 길에 목이 메게 하는 걸까. 올해 추석연휴는 다행히도 주말을 포함하면 5일 이상을 쉴 수 있게 돼 있어 귀성객들이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이동하는 추석절에 자동차로 가득 메운 도로는 물론 하늘길이나 바닷길 할 것 없이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대이동이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귀성 행렬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떠오른 상념이 있다. 귀성길의 정체현상은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지방의 부모들이 수도권 자식들을 찾아 상경하는 이른바 역귀성이 늘어나고 있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지방으로 향하는 귀성인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자동차 보유가 늘어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 귀성은 다소 줄었지만 고향을 찾는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평소의 고된 인생살이를 벗어난 미소가 가득하다.

근대 이후 사회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은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서울로 통하는 ‘부(富)의 집중 현상’이 심화돼 온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사회상을 노래한 가수 정태춘은 ‘고향 잃은 사람들의 어깨 위로 무거운 짐이 되어 얹힌 달… 밤 새워 이 거리 서성대는 고단한 서울의 달’이라고 읊조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불명예스럽게 회자되곤 했던 ‘강부자’는 1970년대 이후 개발붐을 타고 강남의 뽕나무밭 주인들이 졸지에 벼락부자가 되는 세태를 희화화한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새마을운동과 개발 드라이브 정책으로 대변되는 박정희 정부 이후 전반적인 국민소득이 상승했지만, 재벌기업의 등장과 수도권 집중현상은 두고두고 어두운 사회병리현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서울은 세계 유수의 도시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경기도 전역이 수도권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지방의 균형적 발전이 병행되지 못 했다는 것. ‘말은 낳아서 제주도로,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낸다는 전래의 격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최근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지방분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기관과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추진되고 세종시라는 준 행정수도가 세워졌지만, 국민들 가슴 속 깊이 인(燐)처럼 박혀있는 수도권 중심사상은 확고하다 못해 처절하기조차 한다.

우리 양산시민들에게도 적용해 보자. 가족 중 한두 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경우는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고착화되다시피 한 지방 홀대는 지역에 소재한 대형마트나 대기업 산하 중소기업의 매출이 지역에 환원되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 중심부 아파트의 반값도 안 되는 분양가에도 청약은 부진하고 정부에서 내놓는 부동산 대책도 지방으로 내려오면 그 효과가 거의 사라지고 만다. 경제 여건이 그만큼 다른 것이다.

새 정부에서 지방세인 취득세 인하조치를 영구 법제화하겠다고 해 지방자치단체의 집단 반발을 자아낸 것처럼, 지방의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수도권에 거주하는 국민 편에서 정책을 양산하다간 중앙과 지방 불균형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고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사회양극화는 해소되기 어렵다.

추석 귀성인파가 늘어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추석이 되면 바깥 나들이길이 조용해지는 그날이 살기 좋은 나라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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