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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천오백년의 깊은 잠, 백년의 외출..
오피니언

천오백년의 깊은 잠, 백년의 외출

박성진 기자 park55@ysnews.co.kr 입력 2013/10/15 09:34 수정 2013.10.15 09:34



 
 
일제강점기에 강제출토돼
일본에 반출된 부부총 유물
양산유물전시관 특별전시는
역사학계의 쾌거인 동시에
신라 삽량주 영화를 기리는
시민의 자긍심 향상에 기여

최근 필자는 역사적으로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1965년 한일협정 문서 가운데 양산에서 출토한 부부총 유물에 대한 환수를 포기하는 내용이 적시된 문서를 확인한 것이다. 당시 문화재 청구 및 합의내용에 따르면, 일본국립박물관(지금의 동경박물관)에 진열하겠다는 일본측 요청을 받아들여 경주, 창녕 등 다른 지역 고분출토품을 반환받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발전의 기회로 추진한 한일협정은 굴욕외교로 인식돼 많은 국민의 반발을 샀고 나중에 6.3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런 정치적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양산의 국보급 유물의 환수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조치가 이미 1965년에 합의문서로 남아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부부총은 사적 제93호로 지정된 북정동고분군 10호분으로 남아있다. 고분군 중에서 가장 큰 봉분으로 6세기 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부로 추정되는 두 개의 인골은 관모와 복식, 장신구 등으로 미루어볼 때 삼국시대 신라의 귀족이나 왕조에 흡수된 지방 호족 또는 고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유적이 192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발굴ㆍ조사된 후 일본으로 반출돼 현재까지 소장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부총 유물의 국내 환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민간에서 환수추진위원회가 결성돼 활동하기도 했고, 2년 전에는 문화원이 주축이 돼 민관합동으로 유물환수추진위원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부부총 유물의 국내환수 노력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올 4월에 양산유물전시관이 개관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쾌거가 이루어졌다. 부부총 유물의 기획전시가 성사된 것이다.

10월 15일 오늘부터 3개월 동안 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백년만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인 양산부부총 특별기획전에는 보물급으로 평가받고 있는 곡옥목걸이와 금동말안장, 금제굵은귀걸이 등 68점의 유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국보급인 금동제관은 보존상태를 감안해 아쉽게도 전시에서 제외됐지만 이번 전시는 국내 사학계에서 크게 주목할 정도로 이례적이며 역사적인 전시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들어 향토역사 바로세우기가 다양하게 성과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부부총 유물전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향토사학계가 오랜 기간 동안 지역의 각종 유적이나 유물, 민간사적 등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안종석, 김우헌 선생 등 1세대를 이어 정진화, 정동찬 선생 등이 주도해 온 향토사학계는 그동안 양산군지, 시지 편찬과 함께 임경대 등 유적 위치의 비정, 항일독립운동가 열전, 6.25전몰군경전사록 등을 편찬했고 충렬선조들을 한자리에 봉안한 충렬사 건립에 힘을 써 왔다. 양산시에서도 이에 발맞추어 박제상 공이나 삼장수의 인물 구현에 주력하는 한편 유물전시관을 조성하고 박물관으로 확대개편하는 등 문화사업에 힘을 쏟아 왔다.

특히 지난해 유물전시관장으로 외부영입한 신용철 관장의 초빙은 잘한 일이었다. 미술사학 박사 출신으로 학계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재청 감정위원을 역임한 뒤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과 경남도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온 신 관장은 전문가적 안목과 지식 외에도 지역의 옛 역사에 대한 절실한 염원을 가슴에 품고 취임했다고 한다. 그것은 기필코 자신의 임기 내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부총 유물을 우리 전시관에 가져오고야 말겠다는 신념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동경국립박물관이 지방 소도시에 불과한 양산유물전시관 측과 대여전시를 협약할 정도로 완화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신용철 관장의 막후교섭 능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평가하는데 무리함이 없다. 신 관장은 이번 전시 성사의 원인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절실함’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가 엮어놓은 탄탄한 인맥과 시의 든든한 지원, 그리고 북정고분군 바로 옆에 조성된 유물전시관의 개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전문가로서 집념에 가까운 신념을 가진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 27만 시민은 우리 선조의 찬란한 문화와 지역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긍지를 선양할 큰 계기를 만들게 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번은 전시관을 찾아 선조의 숨결을 느껴보면서 문화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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