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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편의점은 동네 가게다. 과자를 팔고 음료를 판다. 담배도 판다. 여느 동네 가게와 다를 바 없다. 조금 특별하다면 스포츠 토토를 판매한다는 점. 최근 가게 위치를 옮기며 25평으로 면적도 넓어졌으니 이제 ‘구멍가게’는 벗어났다고 봐야할까? 아무튼 그렇게 동네 가게로 모닝 편의점은 1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모닝 편의점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 그래서 특별해 보인다. 흔히 ‘편의점 전쟁’이라 부르는 시대가 아닌가. 대기업 상호를 단 체인형 편의점이 골목 점령을 넘어 같은 브랜드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등장. ‘동네 가게’는 하나 둘 골목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다. 모닝 편의점이 위치한 북정동 역시 치열한 경쟁은 마찬가지다. SSM에 편의점도 속속 늘고 있다.
2004년 1월. IMF 여파로 직장을 그만둔 이석현(47) 씨와 당시 자동차 보험 설계사를 했던 김수자(46) 씨 부부가 가게를 시작한 건 김 씨 친언니의 권유때문이다.
적성에 맞고 단골 늘어 매출 오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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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보육 일을 배우기 위해 수업료까지 납부한 상태에서 언니의 추천에 노선을 급히 바꾼 김수자 씨. 자기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보증금 5천만원과 물품구입비 약 3천만원을 들여 가게를 열었다. 도로변이란 나쁘지 않은 위치와 주변에 아파트 단지도 있다. 게다가 일도 자신의 성격과 맞다보니 큰 어려움 없이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단골도 많아졌다. 통도사 부근에서 일부러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고. 다만 남편은 아직도 일이 성격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김 씨는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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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자신 있었다. 10년 간 지켜온 경력이 있었고, 단골이 있었기 때문이다.
“4~5년 전부터 가게들이 참 많이 늘어났지요. 대형마트도 들어서고요. 하지만 솔직히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어요. 그동안 자리를 지켜온 만큼 단골도 많았고,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먹고 살만큼 벌 자신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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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김 씨는 6개월 전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겨야 했다. 건물 주인이 예전 자리에 빵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옮겨온 곳이 불과 예전 자리와 5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타격은 컸다. 매출이 20~3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간혹 ‘언제 이쪽으로 옮겼느냐’, ‘가게가 없어져서 다른 일 시작한 줄 알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잘 나갈(?) 당시 권리금으로 1억원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가게를 팔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람 일이란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지만 김 씨는 매출이 떨어져도 당분간 가게를 팔거나 할 생각이 없다.
“이 동네에서 10년이나 장사를 해 온 저도 힘든데 이제 (가게를 시작한지) 1~2년 된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분들 생각하면 말이에요”
매출이 20~30%나 줄어들었다. 분명 힘든 시기일 텐데 김 씨는 힘들다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업체들을 걱정하며 욕심을 계속 버리고 있다. 가게를 찾는 이런저런 손님들의 힘든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가게를 오래하다 보니 사람들, 특히 단골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요. 대부분 저는 듣는 입장이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참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욕심을 버리게 돼요. 속으로 ‘그래도 난 복 받은 거구나. 저 분들에 비해 난 잘 살고 있구나. 욕심내지 말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는거죠”
‘동네장사’ 10년. 급변해버린 동네 모습이 때론 낯설기도 하고, 옛날 잘 나가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 단골이랍시고 외상은 물론 ‘한 잔 하려는데 돈이 없다’며 돈까지 빌려달라는 손님들도 있다. 그래도 김 씨는 ‘허허’하고 웃는다. 김 씨에게는 그런 일도 동네장사 10년의 ‘에피소드’일 뿐.
가게를 찾은 손님들의 마음에 ‘평안’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며 가게 입구에 ‘평안수’ 화분을 갖다놓은 김 씨. 김 씨는 욕심을 버린 자신의 마음처럼 ‘모닝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의 내일도 ‘굿모닝’이길 기대하며 오늘도 가게 문을 닫는다.
↑↑ 김수자 씨는 가계를 찾는 손님 모두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란다며 ‘평안수’라는 이름의 화분을 입구에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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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마켓 전쟁? 도대체 얼마나 많길래…
체인형 편의점에 SSM 까지
반경 300m에 슈퍼 13곳 넘어
“몇 곳인지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근처에만 해도 편의점이 몇 곳 있으니 꽤 되지 않을까요?”
많은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다. 모닝 편의점 주변에는 슈퍼마켓이 몇 곳이나 될까? 김수자 씨도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한다.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세어보기로 결심.
가게 이용 고객 대부분이 보행자란 점에서 직접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거리도 대략 모닝 편의점 기준 반경 300m 정도로 정했다. 300m라는 거리는 걸어서 물건을 사러 올 수 있는 한계 거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거리 역시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취재를 마치고 모닝 편의점을 나섰다. 김수자 씨가 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아파트 앞으로 가니 맨 먼저 상가에 있는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계속 골목을 돌아다녔다. 편의점이 하나 둘 나타났다. 모든 골목을 돌아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가능한 구석구석을 누볐다.
2시간 정도 돌아다닌 끝에 대략 가게 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트에 기업형수퍼마켓(SSM)까지 모두 12곳. 인근 병원 안에 있는 가게까지 합치면 13곳. 반경 300m 안에 가게가 13곳이나 되는 셈이다. 기자가 미처 찾지 못한 가게가 한 두 곳쯤 더 있을 수도 있다.
정리하면 반경 300m를 돌아다녔으므로 면적으로 약 28만2천600㎡ 정도다. 종합운동장이 약 16만1천530㎡이니까 두 배가 안 되는 면적. 이 안에 13곳의 가게가 위치해 있는 셈이다.
김수자 씨는 인터뷰 내내 “욕심을 버렸다”고 말했다. 반경 300m 안에 13곳의 가게가 있는 현실. 김 씨는 어쩌면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물론 장사가 잘 될 때는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이제 모았던 돈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돈은 더 드는데 장사는 예전만 못하기 때문.
그래도 김 씨는 자신을 “복 받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크게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주변 어려운 사람에 비해 자신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 씨. 어쩌면 김 씨의 욕심 없는 삶이 전쟁터 같은 곳에서 10년 가까이 가게를 꾸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