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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13회 지체장애인의 날
그들이 차도로 다니는 이유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3/11/12 10:16 수정 2013.11.12 10:19
보행법 시행 1년… 여전히 걸을 수 없는 휠체어

두발 보행자 넘어 휠체어 보행자도 관심 가져야





↑↑ 한 휠체어 보행자가 경사진 인도에 설치된 보호기둥(볼라드)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그는 결국 인도로 오르지 못하고 위험한 차도로 보행해야 했다.
“맨홀 뚜껑에 걸려 넘어진 것만 두 번이에요. 얼굴에 상처 입은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죠. 만약에  도로 방향으로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취재를 하려고 들면 전부 다 찍어야 해. 한두 군데가 아냐. 두 발로 걷는 사람들은 몰라. 인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시청 직원들이 직접 휠체어 타고 돌아다녀봐야 아는 거야. 얼마나 힘든지…. 휠체어 다니는 곳만이라도 개선해 줬으면 좋겠어”

봇물 쏟아지듯 터져 나왔다. 지체장애인의 날(11일)을 앞두고 찾은 (사)양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휠체어 보행자(지체 장애인)들은 할 말이 많았다. “휠체어 타고 다니시면서 가장 불편하신 구간이 어디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너도나도 울분을 토해냈다.

“이분이 얼마 전 양산역 앞 인도를 지나다 전동휠체어가 두 번이나 뒤집혀 넘어지셨어요. 얼굴에 상처도 났고요. 근처에 있는 구두수선점 아저씨께서 도움을 주셔서 큰 사고는 없었지만 정말 위험했죠. 차도변이었으니까요”

민경선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휠체어 보행문제는 심각해 보였다. 예상 외로 많은 곳에서 불편을 넘어 위험에 이를 정도라고 했다. 사실 두 발 보행자인 기자로서는 민 사무국장과 휠체어 보행자들의 이야기가 엄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할 것 같았다.

쏟아지는 불편 사항들을 대충 정리하고 직접 거리로 나서보기로 했다. 사전 계획으로는 장애인 두 분 정도에 도움을 받아 함께 보행을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거리로 나가려 하자 휠체어 보행자들은 너도나도 함께 가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동안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자활센터가 위치한 중부동 신도시에서 이마트를 거쳐 장애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보건소까지 이동해 보기로 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신도시 택지에는 비록 따로 인도가 설치되진 않았지만 차로 개념이 아니어서 차량 속도가 느렸고 휠체어는 길 위를 걷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차량과 같은 길을 사용한다는 위험은 남았지만. 

↑↑ 양산시보건소 옆 인도의 경우 경사가 심해 휠체어를 제어하기 힘들 정도다.
높은 경사에 갈 수 없는 인도

하지만 도로로 나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택지에서 벗어나 처음 인도로 올라서는 데 경사가 심해 휠체어가 휘청거렸다. 두 발 보행자에겐 아무 문제가 안 될 경사지만 휠체어 보행자에겐 하나의 ‘도전’이었다.

자활센터 직원의 도움을 빌려 겨우 올라선 인도. ‘이제 좀 편하게 다니겠지’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휠체어 보행자에게 인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휠체어는 울퉁불퉁한 인도 위를 휘청거리며 전진했다. 휠체어를 따라 장애인들의 몸도 휘청거렸다. 두발 보행자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인도는 평평한 곳보다 울퉁불퉁 굴곡이 더 많은 곳이었다.

휠체어를 막아버린 보호기둥

뒤뚱거리는 휠체어를 따라 가다보니 이번엔 ‘보호기둥(볼라드)’이 휠체어를 막아섰다. 차량의 진입을 막기 위한 보호기둥은 차량과 함께 휠체어의 진입도 막아버렸다. 정확히는 휠체어가 지나갈 틈은 있었지만 경사가 심해 휠체어 보행자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 장애인은 결국 도로를 선택했다. “왜 인도로 안가시고 위험한 도로로 가세요”라는 물음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인도로는 갈 수 없으니까” 그는 선택이 아니라 도로를 강요받은 것이다.

양산역을 지날 무렵 과거 한 휠체어 보행자가 넘어졌던 장소가 나타났다. 인도 한가운데 위치한 맨홀 뚜껑이 문제였다. 맨홀이 묻힌 자리에 경사가 생긴 것이다. 두 발 보행자에겐 전혀 문제되지 않을 작은 경사가 휠체어 보행자에겐 큰 위험이었다.

보건소 주변은 위험이 심각했다. 경사 심한 인도는 휠체어 방향을 조절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나던 휠체어가 결국 도로 위로 떠밀리듯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로는 차량 운전자가 전방의 상황을 판단하기 힘든 곡선 구간이다. 자칫 도로에 내려선 휠체어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보였다.

보행법이 시행된 지 만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 지켜본 것만으로도 휠체어 보행자들의 불편과 위험은 여전해 보였다. 신도시 택지에서 보건소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눈앞의 휠체어는 수십 번을 휘청거려야 했다.

휠체어 보행자에게 가장 편안한 길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였다. 대신 목숨이 담보돼야 했다. 실제로 목숨을 잃기도 했고. 결국 보행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두발 보행자들의 권리만 의미하는 듯 했다. 두발 보행자인 기자가 간과하고 있던 휠체어 보행자의 ‘보행’은 그야말로 ‘사투’ 그 자체였다. 
↑↑ 울퉁불퉁한 인도로 인해 휠체어 보행자들은 항상 길 가장자리로 보행하는 게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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