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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의 선행은 이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40년 넘게 성금ㆍ성품 기탁과 대가 없는 등굣길 교통정리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명절 때마다 홀몸 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 복지시설, 학교 등에 수백만원 상당의 쌀을 기부해왔다. 정 씨는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소주동과 서창동에 각각 20kg들이 쌀 100포와 홀몸 어르신에게 10포 등 모두 210포(930만원 상당)를 전달했다. 1972년부터 지금까지 전달한 쌀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억9천100만원에 이른다.
정 씨가 성품으로 쌀을 고집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너무 가난해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배곯는 게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를 중퇴한 정 씨는 허드렛일과 아이스크림 장사를 전전하다 트럭 조수로 일을 시작해 모은 돈으로 트럭을 사서 운수업을 시작했다.
정 씨는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일했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사업이 번창하면서 돈이 생길 때마다 논을 샀다. 농사꾼이 되려던 정 씨는 주변의 권유로 시멘트ㆍ콘크리트블록 공장을 시작했고, 마침 새마을운동 바람을 타고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정 씨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기부활동이다.
2004년 심근경색으로 쓰려져 서울에서 4차례나 큰 수술을 받으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심장박동기에 의지해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한 정 씨는 이후에도 선행을 이어갔다. 정 씨는 당시 “하늘이 아직 부족하다고, 봉사활동을 더 하라는 뜻에서 안 데려갔을 것”이라며 “스스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이러한 선행으로 2004년 자랑스러운 시민상, 2010년 양산시민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쌀을 전달한 뒤 정 씨는 늘 한결같은 말을 한다. “죽을 때까지 기부를 계속하겠다”는 말이다. 올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시민들이 ‘기부천사’라는 거창한 별명을 지어줘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