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특별히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냥 양산은 교통사고가 많은 지역이고 조사인원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조사관 1인당 사고처리 건수가 많은 거죠. 그러다보니 당연히 점수가 올랐던 것이고요. 우린 그냥 열심히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했다. 전국 1위라는 충분히 자랑할 만한 경사에도 그들은 담담한 미소가 전부였다.
양산경찰서 교통사고조사2팀 전상인 경위와 김영삼ㆍ이상훈 경사는 지난 4일 전국 각 경찰서 교통사고조사팀을 대상으로 실시한 평가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1위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교통사고조사평가는 매년 상ㆍ하반기 2차례에 걸쳐 실시하는 것으로 각 지방청에서 1위 조사팀을 선정해 다시 본청(경찰청)에서 순위를 재평가하는 형태다.
평가에는 우선 교통사고조사 목록을 바탕으로 사건처리 건수를 점수로 반영한다. 담당민원인 즉, 교통사고 가ㆍ피해자에 대한 만족도를 모니터링 해 이 또한 점수로 반영한다. 얼마만큼 민원인 입장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민원인을 설득시켜 조사 결과를 이해하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더불어 조사관 전문성을 평가하기 위해 각종 교통관련 자격증 취득 여부를 평가하고 전문기관으로부터 교육받은 내용까지 평가항목에 넣어 비교한다. 이처럼 다양한 항목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얻어야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양산경찰서 교통사고조사2팀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러한 계량적 수치 보다 조사관들의 업무 자세에 있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고객 중심’의 가치관이 확실하다.
교통사고 조사 업무라는 게 언제나 명확한 결론을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고라는 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뺑소니 등은 가해자를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담당 조사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항의하는 일이 부지기수.
이상훈 경사는 “사고 조사를 하다 보면 분명히 한계라는 게 있는데 피해자분들은 언제나 그 한계를 뛰어넘어 결과를 찾아주길 원하신다”며 “그렇다보니 대통령실, 청문감사실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끔찍한 현장 조사관도 ‘트라우마’↑↑ 전국 1위를 차지하고도 “특별히 잘한 게 없다”며 겸손해하는 고통사고조사2팀. 이들은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순박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낮은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종배 팀장과 김영삼 경사, 전상인 경위, 이상훈 경사. ⓒ
피해자 돌보느라 자신은 ‘스트레스’
최선의 노력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듯, 조사관들이 언제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조사관들은 최종 결과에 대해 피해자를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담당조사관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까지 피해자들을 만나 사고 상황을 이해시키고 조사 결과에 대해 설득에 나선다. 이러한 설득은 조사 결과에 불만을 갖던 피해자도 감동을 받게 한다는 설명이다.
“예전에 조사결과에 불만을 품고 민원을 제기하던 한 피해자께서 저희들이 조사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이해시키니 나중에는 ‘미안하다, 열심히 수사해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사람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는 게 바로 소통이고, 그 소통이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상훈 경사와 마찬가지로 김영삼 경사는 “교통사고 조사는 설득의 미학”이라고 말했다. 김 경사는 “교통사고 조사는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과 설득이 필요하다”며 “교통사고에 많은 조사 법칙이 있지만 민원인들은 법대로 한다고 다 만족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물론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하는 이들에게도 말 못할 고충은 있다. 전상인 경위는 “사실 힘든 점이라면 우리가 거친 사고를 많이 목격한다는 부분인데 이러한 사고 장면에 우리는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게 된다”며 “우리도 사실상 명상과 치유가 필요한데 그럴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토로했다. 남의 상처를 돌보는 사이에 정작 자신들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영삼 경사는 수사 한계에 봉착했을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한다. 사고라는 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뺑소니 등은 가해자를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오토바이, 헬멧 반드시 착용해야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물었더니 전상인 경위는 당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보통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일반인들은 대게 큰일을 겪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교통사고를 일부러 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부분 실수로 생긴 일이니까 너무 겁먹지 마시고 차분하게 경찰서로 신고하세요. 경찰관 조사에 잘 따라 주시면 자신에게 큰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을거니까요. 물론 종합보험, 운전자보험 등으로 사고에 미리 대비를 하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죠”
이상훈 경사 역시 “교통사고는 살인사건처럼 나쁜 사람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 사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는 일인 만큼 우리 조사관들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조사를 한다”며 “항상 보험에 잘 가입하고 사고 발생하면 현장에서 안전을 제일 우선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영삼 경사는 학생들의 이륜차(오토바이) 운전에 주의를 당부했다. 김 경사는 “청소년들 무면허 운전이 심각한 상태”라며 “안전모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분은 학교에서 기본 교육을 통해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경사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꼭 타야겠다면 면허 취득은 당연하고, 헬멧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난폭운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