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 내려앉은 참새 몇 마리의 움직임만 남은 조용한 작은 시골 학교.
오후 3시 30분.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둘 운동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170cm를 훌쩍 넘긴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아이’같지 않은 학생부터 초등학생티도 벗지 못한 학생까지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운동복을 입고 쏟아져 나온다. 다부진 눈매의 아이들은 창단 2년 만에 전국을 제패한 원동중학교 야구부원들이다.
![]() |
ⓒ |
원동중 야구부는 지난 7월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제44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2연패다. 지난해 첫 우승을 했을 때만 해도 언론과 주변에서는 ‘깜짝 우승’, ‘기적’이라 표현했다.
그런 원동중 야구부가 올해 대통령기 2연패를 통해 ‘기적’이란 꼬리표를 떼 냈다. 이제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 수준의 야구 명문 중학 반열에 오른 것이다.
전교생 52명. 이 가운데 21명이 야구부인 시골 작은 중학교가 폐교 위기를 이겨내고 야구 명문으로 우뚝 서게 된 과정엔 학교와 학부모는 물론 지역주민, 그리고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 |
ⓒ |
양산시야구협회서 야구부 창단 제안
원동중, 분교 위기서 최후의 돌파구
원동중학교에 야구부 창단 움직임이 시작된 건 지난 2010년부터다. 당시 정원 36명의 원동중은 경남도교육청에서 2년 뒤인 2012년 분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김주만 전(前) 교장을 비롯해 교직원들이 분교를 막기 위해 머리를 모았지만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줄어드는 학생 수를 인위적으로 늘릴 묘책이란 게 과연 있을까 싶었다. 그러던 차에 양산시 야구협회측에서 ‘야구팀 창단’을 제의해 왔다.
최윤현 체육교사는 “교직원과 학부모, 총동창회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때 양산시야구협회에서 야구부 창단을 제의하시더군요. 협회측에서는 ‘시내 학교를 다 돌고 왔는데 죄다 퇴짜를 맞았다’며 마지막이란 각오로 우리 학교를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게 야구단 창단의 첫 시작이었습니다”라며 회상했다.
당시 양산시 야구협회를 이끌던 박치병 회장은 “지역 야구 유망주 보호와 발굴, 육성을 위해서라도 학교 야구부 창단은 꼭 필요했지만 우리 생각에 공감하는 학교는 사실 없었다”며 “생각보다 운동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많았고,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간 곳이 원동중”이라고 말했다.
![]() |
ⓒ |
야구부 만들어 일단 분교부터 막고 보자
반대 학부모 설득 98% 찬성 이끌어내
양산시 야구협회로부터 제안을 받은 원동중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 야구부 창단이 학생 학업과 학교 발전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부가 기울어가는 학교를 다시 일으키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김 전 교장은 최 교사에게 야구부 창단 의향을 물었고 최 교사는 “학교를 살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대답했다.
최 교사의 ‘확신’은 단순 기대가 아니었다. 다음 해면 전교생 수가 20명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야구부원만 제대로 확보해도 전교생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야구부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학생 수는 늘어나는 만큼 분교라는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계산 끝에 나온 확신이다.
야구부 창단 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김 교장과 최 교사를 비롯한 찬성측 학부모들이 반대측 학부모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최 교사는 “2년 후 분교를 앞둔 원동중으로서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점을 반대측 학부모들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우리 설득으로 야구부 창단을 위한 설문조사를 하자 98% 찬성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 |
ⓒ |
허구연 해설위원 양산시에 지원 요청
양산시ㆍ협회ㆍ지역민 의지 모아 ‘창단’
원동중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야구부 창단 절차를 본격 시작했다. 남은 문제는 선수 수급과 운영 자금. 사실 선수 수급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양산리틀야구단이 전국 최고 실력을 갖췄음에도 중학 야구부가 없어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문제는 운영비였다. 원동중과 양산시야구협회는 양산시와 양산교육지원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역 야구 저변 확대라는 명분과 리틀야구단 소속 아이들이 야구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며 설득에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허구연 MBC해설위원이 큰 도움을 줬다. 양산시야구협회와 인연이 있던 허 위원이 야구부 창단 소식에 나동연 시장을 만나 직접 도움을 요청한 것.
결국 양산시와 양산교육지원청도 원동중 야구부 창단 지원을 결정했다. 원동중은 이듬해 1월 한화이글스 출신 신민기 씨를 초대 감독으로 임시 팀을 꾸렸다. 3월에 입학 예정인 리틀야구단 출신 선수 6명과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오기로 한 5명 등 모두 11명의 선수로 훈련을 시작했다. 2011년 3월 21일 창단식 이후에도 테스트를 통한 선발과 전학 등을 통한 선수 수급은 꾸준히 이뤄졌고, 결국 20여 명의 선수진을 구축하게 됐다.
어렵게 중학 야구 무대에 발을 내디딘 원동중 야구부는 창단 후 2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팀 창단 후 리틀야구단과 가진 첫 경기에서 5회 콜드게임으로 졌다. 예고된 패배였다.
당연하듯 따라다녔던 ‘꼴찌 야구부’ 별명은 창단 만 2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경주시장배 전국중학 야구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8개 팀이 참가한 작은 대회였지만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의미 있는 우승이었다.
이후 원동중 야구부는 같은해 3월 전국소년체전 경남대표선발전 준우승, 4월 경남 종합체육대회 준우승, 5월 전국대회 경남대표선발전 우승 등 정상급 성적을 뽐내다 급기야 8월 열린 43회 대통령기 전국중학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 최고 실력의 33개 야구팀을 물리치고 우승한 원동중학교는 더 이상 ‘꼴찌 야구부’가 아닌 신흥 야구명문이 됐다.
“친구들과 계속해서 야구하고 싶습니다”
기숙사ㆍ고교 야구부로 애들 꿈 이어줘야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시설 등 운동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전용 연습장이 없다 보니 학교 운동장을 전세 내다시피 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일반 학생들의 공간을 뺐고 있는 것이다.
주위 도움으로 실내연습장도 마련했지만 사실상 비닐하우스 수준이라 부족함이 많다. 무엇보다 기숙사가 없어 합숙이 어렵다는 점은 전력 상승에 많은 제약이 되고 있다. 다른 지역 우수 선수 영입이 불가능해 보다 단단한 선수진 구성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역 고교야구부 창단도 시급하다. 최윤현 교사는 “지난해 졸업생 6명 가운데 5명이 고교 야구부 진학을 위해 전학을 갔고, 올해도 7명 가운데 4명이 전학을 간 상태”라며 “양산에 고교 야구부가 없다 보니 우리가 키운 선수들을 우리 학교에서 졸업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3년 전 초등학생과의 경기에서 콜드게임으로 졌던 원동중 야구부는 오직 땀으로 전국 최고 자리에 올라 어른들 응원에 보답했다. 이제 다시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프로선수를 꿈꾸며 쉼 없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이 마음껏 날갯짓할 수 있도록 말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