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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양산지역 전통사찰을 찾아서
1천300년 전 원효대사 숨결이 깃든 원효암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4/12/30 10:09 수정 2014.12.30 10:08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 전통사찰 제76호로 지정

원효대사 따르는 제자 1천명 도 깨친 수도처

천성산 정상부에 자리잡아 천혜 자연경관 자랑



원효암(元曉庵)은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 자락에 있는 조그만 암자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내원사(內院寺) 부속 암자로, 전통사찰 제76호로 지정돼 있다.

원효암은 원효대사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로, 해발 900m 천성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어 천혜 경관을 자랑한다. 맑은 날이면 부산과 일본 대마, 울산 앞바다까지 내려다보인다고 한다.

원효암은 원효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교학(華嚴敎學)을 배우러 온 수행자 1천명을 가르쳐 도를 깨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1천300년 전, 원효대사가 기장 천백암(千百庵)에 있을 때 일이다.

암자에서 혜안으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중국 산동성 법운사에 신도 1천명이 불공하고 있는데, 그 절이 곧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 절 법교(法敎)가 죄를 지어 벼락을 내려 천벌을 주려는 찰나였는데, 신도 1천명은 억울한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때 원효대사가 ‘해동원효(海東元曉)’라고 새긴 판자를 던지니 갑자기 법원사 주위가 금빛으로 변했다. 신도들은 환한 금빛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밖으로 나왔고, 무너지는 절에서 목숨을 건졌다. 이렇게 구원받은 신도 1천명이 원효대사를 찾아와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원효대사는 이들을 거느리고 천백암을 떠나 동래 범어사 쪽으로 가던 중 하북면 중방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원효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성산을 가리켰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원효대사가 내원암으로 가니 동지섣달 찬 겨울임에도 칡꽃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그로부터 화엄벌에 집을 짓고, 제자 1천명을 가르치고, 자신은 보임(保任)을 공부했다. 그 이후 이 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됐고, 절을 지어 원효암(元曉庵)이라 일컫게 됐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천성산 일대에는 칡덩굴이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짧은데, 원효대사가 제자와 함께 수도할 당시 한 제자가 마을에 동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날 동냥을 모두 쏟아 버린 일이 있었다.

이를 들은 원효대사가 이튿날 그 제자에게 흰 종이를 한 장 주며 그 자리에 가서 버리고 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그 이후 칡덩굴이 길게 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원효암에는 편액이 걸린 중심 법당을 비롯해 미륵전과 산령각, 범종각 등이 있다. 중심 법당은 공포 없이 둥글게 깎은 도리를 얹은 굴도리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임에도 단순하고 소박한 멋을 지니고 있다.

좌우 퇴칸은 생활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어칸과 좌우 협칸 3칸은 예배 공간으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다. 이 불상은 근래 발견된 불상조성기에 의해 1648년(인조 26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경봉(鏡峯)’이라는 범종을 안치했다.

법당 동편 석벽에는 마애아미타삼존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1호)이 새겨져 있다. 마애아미타삼존불은 얕게 선각(線刻)한 조각 기법을 통해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한 폭의 불화를 연상시킬 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 수법 때문에 한국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암자 방문객과 천성산을 오르는 등산객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준공했으며, 진입도로도 아스팔트로 포장해 차량으로 접근하기도 쉽다.


참고자료 대한민국 구석구석, 양산시 관광정보, 디지털 양산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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