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회원으로 작가이자 양산문화원 사무국장을 지낸 김진명 씨(사진)가 (사)코리아양산문학연구소(소장 김진명)를 설립하고 북정근린공원에 ‘고향의 봄 이원수 선생 문학관’ 설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김 소장이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북정근린공원을 이원수 공원으로 개명하고, 당시 이강원 시의원이 노래비를 세우는 등 문학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박규식 전 도의원 등과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하고, 직접 위원장을 맡았으나 관련 단체와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좌절됐다.
김 소장은 문학관 건립 추진 배경에 대해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이원수 선생이 양산 출생이며, 북정동이 고향의 봄 노랫말 작시 배경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향의 봄 노랫말 배경이 북정동이라는 주장은 논란이 있는 상황. 2002년부터 창원시와 양산시는 서로 고향의 봄의 배경이라며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당시 양산문화원 사무국장이었던 김 소장은 이원수 후배인 아동문학가로부터 이원수 선생이 양산에서 태어나 12살에 마산으로 갔다는 증언을 들었으며, 이 사실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반면, 이원수 선생이 1980년 10월 순수어린이잡지 ‘소년’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선생이 태어난 곳은 양산이지만 자란 곳은 창원이며, 양산에서는 1년도 못 돼 곧 창원으로 이사했다는 내용과 함께 마산에 비해 작고 초라한 창원 풍경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를 회상해 쓴 동요가 고향의 봄이라고 기술하면서 북정동이 고향의 봄 배경이 아니라는 증거가 제시되기도 했다.<본지 365호, 2011년 1월 25일자>
이에 대해 김 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1986년 양산군수로 부임한 이두연 군수가 은사인 향파 이주홍 선생께 인사를 드리러 가면서 북정동이 고향의 봄 배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1979년 5월 이주홍 선생과 이원수 선생이 북정 생가를 찾아 나섰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원수 선생이 너무 가난해 10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2살 때 마산성호초등학교로 전학 가 창원에서 한학을 했다고 했으나 이는 어릴 때 초라한 모습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 거짓으로 꾸몄다는 것을 실토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이주홍 선생이 증언하면서 이두연 군수에게 이원수 선생 생가와 기념사업을 진행해 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우리 민족의 노래는 애국가, 아리랑 그리고 고향의 봄이며, 고향의 봄은 북한을 비롯해 외국으로 이민 간 동포도 애창하는 민족의 서정 노래”라며 “이원수 선생은 양산 출신이지만 대한민국 대표 문학가이며, 문학관 건립 후 전국 백일장과 이원수문학상 제정, 책자 발간 등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