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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창간 기획] 우산 윤현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기획/특집

[창간 기획] 우산 윤현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15/09/08 10:54 수정 2016.06.21 10:54
임시정부 초대 재무위원장 지낸 양산이 낳은 위대한 독립운동가
생가터 방치, 기념사업 전무… 이제는 양산시민이 나서야 할 때

 
↑↑ 우산(右山) 윤현진 선생
 
광복70주년 계기로 윤현진 선생 추모ㆍ선양사업 적극 추진해야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 선생은 양산 출신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이다. 1892년 상북면 소토리 내전마을에서 태어나 불과 17세 소년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30세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선생은 1919년 고향에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일제 탄압에 중국으로 건너간 뒤 안창호, 이동휘, 김구, 김규식, 여운형, 신익희, 이동녕 등과 함께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핵심인물로 참가했으며, 임시정부 초대 재무위원장을 지냈다. 현재의 기획재정부 장관에 해당하는 요직이다.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중책을 담당하면서 왕성하게 활약했지만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21년 9월 불과 30세 나이로 중국 상해에서 요절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광복 50주년이었던 지난 1995년 선생의 유해를 봉환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선생의 유해가 고국에 안장된 지 20년, 광복70주년을 맞은 2015년 현재, 선생을 기리는 양산시의 추모ㆍ선양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한 마디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전혀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생가터는 당시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지난 2005년 양산문화원이 표지판을 세웠지만 관리가 안 돼 조금씩 훼손ㆍ방치되다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더구나 상북면 내전마을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고시되면서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선생의 생가터는 공장으로 둘러싸이게 됐다. 특히 생가터 바로 뒤편은 산막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거대한 옹벽이 가로막고 있다.  


↑↑ 1919년 10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사진 ①윤현진 ②안창호 ③신익희 ④현순 ⑤김철 ⑥최창식 ⑦이숙춘
양산시립박물관에는 윤현진 선생 기념코너가 마련돼 있지만 관련 사진이나 유물은 전혀 전시돼 있지 않다. 선생 관련 기록물과 유물은 대부분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005년 ‘부산을 빛낸 인물’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윤현진 선생을 포함했다. 당시 부산시 시사편찬위원회는 윤현진 선생이 양산에서 태어났을 뿐 구포 구명학교를 다녔고,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운영하며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등 부산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이라고 포함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양산시가 선생에 대한 학술연구나 선양사업에 지지부진한 사이 신라 충신 박제상 공 유적지 복원사업을 울산시에 빼앗긴 것처럼 또다시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나마 지난 1959년 양산군민이 성금을 모아 교동 춘추공원에 선생의 기념비를 건립하고(현재 충렬사로 옮김), 지난 2008년 윤종상(88, 원동면) 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개인재산을 털어 원동면 서룡리 분다마을에 ‘윤현진 선생 순국비’를 세운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2009년 물금읍 가촌리에 세워진 항일운동기념탑 부조에 선생의 이름을 새겨 해마다 추모하고 있지만 생전 선생의 활동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평가다.


양산문화원은 2005년 생가터 표지판 설치 이후 기념전시회와 유적 탐방, 달력 제작 등을 진행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이후 양산시 차원의 기념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민간 차원에서 생가터 복원을 포함한 기념사업에 대한 논의는 간간히 이어왔지만 말 그대로 논의에만 그쳤다. 


인근 울산시가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서울시와 충북 증편군 등 전국 각지에서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윤현진 선생 순국비를 세운 윤종상(88) 씨는 “양산의 인물인 윤현진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손에 알려도 부족한데, 선생의 고향인 양산시는 선생을 기리는 어떠한 활동도 없다”며 “이런 훌륭한 인물을 알리는 제대로 된 동상 하나 없으니 후손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생각에 직접 나서서 순국비를 세우게 됐지만, 생가터 복원 등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윤현진 선생의 애국정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관객 1천200만명을 넘어선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밀양 출신인 약산 김원봉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 활약이 재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며,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했던 윤현진 선생은 여전히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전 재산과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에 나선 윤현진 선생. 선생의 고귀한 희생에 이제 양산시민이 보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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