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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배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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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배우는 거죠”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입력 2015/10/20 09:55 수정 2015.10.20 09:50
배상환 물금초 학교운영위원장

재능기부로 후배 사랑 실천



“후배 돕고 싶다” 학교에 자청
5월부터 매주 2시간 영어수업
15년 학원 운영 경험 바탕으로
자신감 심어주니 실력도 ‘쑥쑥’

나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신이 가진 물질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가 없이 제공한다는 것. 셈 빠른 요즘 세상에 이런 나눔은 왠지 손해 보는 일 같은 것도 사실이다.

물금초등학교 49회 졸업생인 배상환(51) 학교운영위원장은 요즘 나눔의 맛에 빠져 산다. 예전부터 모교 총동창회 사무국장 일을 맡아 학교를 위해 봉사해 온 그는 올해 4월부터는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아 ‘봉사’ 활동 일선에 나섰다.

그런 배 위원장이 ‘학교운영위원장’이라는 막중한 봉사를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재능을 후배들과 나누는 또 다른 봉사에 눈을 떴다. 15년 넘게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자신이 그동안 배워온 것들을 방과 후 수업을 통해 후배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

“학교 관련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학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죠. 줄어드는 학생 수도, 낡아 버린 건물도 많이 안타까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성적에 많이 놀랐어요. 이런 현실을 보고나니 운영위원장을 떠나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아이들 성적 향상에 직접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 온 만큼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일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고…”

배 위원장 요청에 정복순 교장은 고민했다. 부탁은 고마웠지만, 교육이란 게 꾸준히 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섣부르게 허락했다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만 남기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정 교장은 배 위원장이 보여준 평소 모습을 믿고 아이들이 가장 취약한 영어 수업을 부탁했다.

배 위원장은 그렇게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1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배 위원장에게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5~6학년 합쳐서 6명. 아이들은 학교에서 추천받아 비슷한 수준으로 선정했다. 수업 시작 전 배 위원장은 아이들과 함께 구호를 외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수업을 해보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습득력이 많이 달라져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먼저에요”

배 위원장 수업은 상벌이 확실하다. 수업 중간 퀴즈를 내 맞히는 아이에겐 용돈을 준다. 수업 태도가 많이 불량하거나 과제를 안 하는 경우, 쉬운 문제를 반복해서 틀리는 경우엔 이마에 ‘알밤’을 먹이기도 한다. 용돈을 줄 때도 알밤을 먹일 때도 웃음이 늘 함께한다. 배 위원장도 아이들도 수업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가능하다.
덕분에 아이들 실력은 급성장 중이다. 최혜연 교사는 “지금 배 위원장 수업을 듣는 아이 중 한 명이 예전에 영어성적이 많이 저조했는데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점수가 상당히 많이 올랐다”며 “아이 스스로 공부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배 위원장이 아이들 특성을 잘 아니까,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수업하니 (성적 향상이) 가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과 후 수업이다 보니 아이들도 학원이다 뭐다 해서 빠지기 쉽죠. 그런데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하니 오히려 제가 고마워요. 아이들이 발전하는 모습도 고맙고요”

배 위원장은 아이들이 잘 배워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물금초등학교는 신도시 조성 이후 학생들이 빠져나가 심각한 학생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는 물론 총동창회와 학부모회에서 학교 부활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쓰지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배 위원장으로서는 소중할 수밖에 없는 후배들이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를 통해 넓은 세상을 꿈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좋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디딤돌, 그걸 놓는 역할이 지금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걱정만 하던 배 위원장. 그의 말대로 아이들이 더욱 넓고 좋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교육 당국과 행정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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